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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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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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9월호>

[본 글은 한스 크리스티안(Hans Kristian)이라는 덴마크인 목사의 구원 간증으로, 데이브 헌트(Dave Hunt) 형제가 라는 책에 담은 내용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 편집자 주]

나의 어머니는 매일 저녁 자녀들을 모아놓고 함께 기도를 하셨다. 아버지도 함께하셨고, 우리는 오래된 찬송가들을 부르며 하나님께 우리를 돌봐주시고 우리나라에 자유를 회복시켜 주시라고 기도했다. 아버지는 1932년 대공황 당시 한 번 사업이 망한 적이 있으셨고, 재기하셨을 당시 독일인들이 덴마크를 차지해 다시 사업을 앗아가 버렸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우리 가족은 계속 기도해야만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께서 실제로 살아 계시며, 우리가 부르면 도와주실 준비를 하고 계시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성장했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가 유아 때 세례를 받았던 덴마크의 루터교 국가교회에서 견진을 받았다. 우리에게 견진은 어린아이에서 청소년이 된다는 의식처럼 여겨졌다. 사실 견진은 그냥 종교적인 의식이 아니라 파티와 친척들이 주는 선물들이 있는, 14살짜리 아이가 놓칠 수 없는 큰 행사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90% 정도의 덴마크 사람들이 그 국가교회를 다닌다.
그러나 교회를 빠지지 않고 다니는 사람은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 겨우 5%에 지나지 않는다. 덴마크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신앙이란 생활방식이라기보다는 태어날 때부터 물려받은 유산 같은 것이다. 한 사람이 하나님과 갖는 관계는 당연한 뭔가로 여겨지는, 드러내놓고 말하기를 꺼려하는 주제였다. 유아 세례나 견진 등의 의식들이 끝나고 실행되는 어떤 것이었다. 이런 의식들을 뛰어넘어 한 사람이 자신의 종교로 뭘 하든지 그것은 그가 알아서 할 문제였다.
소년 시절에, 나는 내가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암묵적인 생각을 가지고 성장했다.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었고 나의 신앙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정기적으로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친구들에게 알리기를 두려워했다. 친구들이 나를 무시할 수도 있었고, 친구들이나 그들의 부모들은 견진이나 결혼식, 장례식,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등의 행사 때 말고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가족은 보통 2,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큰 교회에 다녔다. 그런데 주일에는 대개 회중이 35명밖에 되지 않았다. 적게 나온다고 해서 사람들은 침울해하지도 않았다. 그런 것이 정상으로 여겨졌고, 더군다나 목사님이 주일날 나올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우리야말로 “신실한 소수”로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들이 다른 이들보다 더 의롭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교회에서 주로 설교를 한 루터교 목사는 우리 부모님의 친구였고, 우리 크리스티안 집안의 자녀들은 목사님의 자녀들과 거의 같은 나이였다. 우리 가족과 목사님의 가족은 휴일을 함께 보내곤 했다. 나는 그분을 한 사람으로서 좋아했다. 목사님은 재미있는 분이셨지만, 내가 15세 정도가 되었을 때 나는 목사님께서 주일이 아닌 날에는 하나님과 신앙에 대해 대화 나누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못마땅했다. 사실 목사님은 설교단에서도 하나님에 대해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목사님의 설교는 대개 정치와 철학, 또는 심리학이나 사회 개혁 등에 관한 것이었다.

어느 주일, 원래 다니던 그 큰 교회에 가려고 채비를 했는데 너무 늦는 바람에 어머니는 우리를 집에서 훨씬 가까이에 있는 교회로 데려가셨다. 그날 강단에는 매우 진지하고 열정적인 목사님이 전적으로 성경에만 근거를 둔 설교를 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듣고 싶어했던 설교였다. 큰 교회의 그 목사님이 설교하는 인간의 지혜보다 훨씬 더 무게 있게 느껴졌다.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이 목사님이 하는 성경적인 설교에 경청했다.
이 교회에는 부유하고 조금은 괴짜 같은 남자가 있었는데, 당시 나에게는 그 사람이 신앙에 대해 매우 이상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는 어느 주일 내 앞에 떡하니 앉더니,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내가 “구원”받았는지를 캐물었다. “구원”이라는 말 자체가 낯선 표현이었지만, 나는 그것이 하늘나라 가는 것과 관련 있겠거니 생각했다. 나는 사람이 죽어보지 않고는 자신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을지 알 수가 없고,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나야말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세례받고 견진받았으며, 그 이상을 묻는 것은 아저씨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그에게 넌지시 말했다. 가능한 한 그 이상한 아저씨를 피해 다녔고, 교회에 다니는 다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이 그를 대한다는 것에 위안을 받았다.

어느 날 이 새로운 교회에 다니고 약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나는 친한 친구와 우리 집 앞에 앉아 학교를 졸업하면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가에 대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둘 다 열일곱이었고, 다섯 살 때부터 친구로 지냈다.
“그런데, 인생에는 직업을 얻고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뭔가가 있을 거 같아.” 내가 진지하게 말했다. “인생은 무덤을 지나서도 계속되니까 우리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준비를 해야 해.”
“한스야, 난 오랫동안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싶었어.” 안느가 말했다. 놀라운 고백이었고, 나 또한 진지하게 이렇게 말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나는 그렇게 친구에게 권면했다. 우리는 다음 주일 함께 그 성경적인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러 갔고, 그때부터 매주 그 교회에 출석했다.
나는 곧 안느 안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목도했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토론을 많이 했고, 그러다 자주 실제로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안느가 바뀐 것이다. 나는 그와 더 이상 싸울 수가 없었다. 이 점이 나를 무척 고민하게 만들었는데, 나는 분명 그가 주일에 듣는 설교들로부터 뭔가를 얻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만 내 자존심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할 뿐이었다.
“안느야, 어떻게 된 거니?” 한 주 동안 줄곧 물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마침내 내가 물었다. “너, 너무 많이 바뀌었어!”
“한스야, 나 ‘구원’받았어!” 그가 흥분해서 말했다. “지금까지 너한테 어떻게 말할까 고민했는데, 네가 물어 줘서 고마워. 모든 것이 놀랍고, 이제 모든 것이 달라졌어.”
‘안 돼!’ 나는 생각했다. ‘저 말은 그 괴짜 아저씨가 쓰던 말이잖아!’ 나는 거의 폭발할 것 같았지만 겨우겨우 참고 있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안느에게 말했다. “내가 너에게 교회 다니라고 그랬잖아. 너도 그거 알잖아. 너, 6개월 정도 교회 다니더니 네가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는구나! 야, 네가 모를지도 모르지만, 난 교회 평생 다녔거든!”
“하지만 한스, 넌 죄인이야!” 안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나는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때 그 친구와 주먹 싸움을 시작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정말 간절히 도움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꾹 눌러 참았다. 아닌 게 아니라 몇 주 동안이나 그 성경적인 목사님에게 가서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안느가 나와 동년배였기에 나를 더 잘 이해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안느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난 그만큼 절실했었다.
“안느, 네가 구원에 대해서 얘기를 좀 해줬으면 좋겠어.” 나는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너에게 일어났고, 뭐 그런 거 있잖아.” 나는 마땅한 말을 찾으며 주저하듯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안느가 벌떡 일어서더니 자기 손목시계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야, 나 까먹을 뻔했어. 나 오늘 약속이 있거든. 한스야, 다음에 보자. 미안해!” 친구는 그렇게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길을 내달려 버렸다.
나는 정말 속이 끓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녀석이 자기는 구원받았고 나는 죄인이라 하더니, 그래서 그에게 진지하게 도움을 구했더니 이제는 시간이 없다고 하네! 그래, 참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다! 이 바리새인 같은 놈아!”
그날 밤 안느가 해준 말이 나의 양심을 망치처럼 내리쳤다. “한스, 넌 죄인이야! 한스, 넌 죄인이야!” 나는 쉽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존심 때문에 인정해야 할 것을 인정하지 못해 싸우고 있었다. “나는 매우 독실하고 똑바로 살려고 노력했다. 침례도 받았고 견진도 받았다. 그런데 ‘구원받는다’는 것은 무슨 말이고, 안느는 교회에 몇 개월밖에 다니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것이 그 녀석에게 일어났으며, 평생 교회 다닌 나는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이틀 밤낮 할 것 없이 이 싸움이 계속되었다. 친구 녀석이 한 그 말, “한스, 넌 죄인이야!” 바로 그 말 때문에 식욕도 떨어지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셋째 날, 나는 시내 전차에 승차해 맨 뒷자리에 앉았다. 누군가의 옆에 앉기에는 마음이 너무 상해 있었다. 그런데 한 술주정뱅이가 올라타더니 자리를 찾으며 비틀거리며 오다가 나를 보더니 말을 걸려고 했다. 풀풀 풍기는 술 냄새를 참을 수도 없었거니와, 내가 지금까지 함께 어울린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혹 지나가던 친구가 술주정뱅이가 내 옆에 있는 것을 보면 이를 어쩌나 하며 걱정을 했다. 그 사람은 눈이 충혈되어 있었고, 말은 느린 데다 옷은 더럽고 거의 반 누더기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갔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따라오면서 자기 인생이 얼마나 곤고하고 절망적인지 하소연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내 코가 석자였던지라 그를 이리저리 피했지만, 그는 집요하게 나를 따라오며 소화도 제대로 되지 않은 술 냄새를 토해 내며 듣고 싶지도 않은 자신의 불행하고 절망스러운 인생사를 횡설수설하는 것이었다. 여자들에게 몇 번씩이나 퇴짜당하고, 직업도 수도 없이 잃고, 나쁜 습관을 고치고 싶은데 그럴 힘이 없다는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해댔다. 전차 뒤편에서 한 발짝 간격으로 그를 피하며 돌아다니는 것을 포기하고 이제 자리에 앉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을 때, 이 불쌍한 아저씨가 나를 멈춰 세웠다.
“나도 내가 죄인인 걸 알아.”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비통하게 울면서, 때가 타고 찢어진 셔츠 위에 침을 질질 흘렸다. 그 말이 내 귀에는 나팔이 울리듯 울렸고, 나는 갑자기 그의 팔을 붙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아저씨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중 하나예요!” 내가 얼마나 세게 그를 붙들고 흔들었는지 그는 분명하게 내 말을 알아들었다.
“아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야!” 그가 중얼거렸다.
“당신이 스스로 자신이 죄인이라고 말했잖아요! 모르시겠어요? 예수님은 아저씨와 같은 죄인들을 위해서 죽으셨어요!”
그는 눈물이 흐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더니, 아까와 달리 뭔가 생각이 난 듯한 눈빛으로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거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해주시던 말씀인데!”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 어머니가 나를 위해 수년 동안 기도하고 계시지.”
“그럼요. 아저씨 어머니가 옳으세요!” 나 스스로도 흥분하여 그에게 간절하게 계속해서 말했다. 그 아저씨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정말 쉬웠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어요. 아저씨, 죄인이잖아요! 예수님을 부르세요. 예수님께서 아저씨를 구원해 주실 거예요. 성경에 그렇게 써 있어요!”(롬 10:13)
눈물이 그의 뺨에 흘러내렸다. “그래, 그렇게 할게!” 그가 외쳤다. 그리고 그는 좌석 뒤편을 붙든 채 이리저리 비틀거리면서 얼굴을 하늘을 향해 들고서 큰 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수님께 자신을 용서해 주시고 자신 안에 들어와 주시라고 간구했다.
나 자신도 놀라서 보는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별안간 그의 얼굴 표정이 바뀌더니 술 취해서 어리숙한 얼굴에서 갑자기 정신이 말짱한 얼굴이 되었다. 화평과 기쁨의 빛이 그의 눈에서 빛났다. 아저씨는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처럼 보였다.
그때 갑자기 나의 뇌리에 박히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뭔가를 깨닫게 되었다. 즉 인간이 하나님과 갖는 관계는 은혜만을 근거로 하는 것이지, 내가 지금까지 자랑스럽게 여겼던 그런 선행들이 아니며, 오히려 그 선행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딛 3:5) 하늘에서 주신 계시를 받은 것처럼, 나는 나 자신의 교만과 반역과 마음의 이기적인 고집을 보게 되었다. 나 또한 세상에서 제일가는 죄인이었다. 나는 갑자기 기쁨을 느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문을 두드리실 때마다 문을 걸어 잠갔던 그 교만을 내려놓고, 나는 마음의 문을 열었고, 바로 그 순간 예수님은 내 안에 들어와 사셨다.
“나도 구원받았어요!” 나는 그와 악수를 하면서 소리쳤다. 우리는 보물을 발견한 두 소년처럼 거기에 서서 빛나는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우리는 둘 다 한바탕 웃었다. 그냥 웃음이 아니라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성질의 웃음이었다. 마치 내 안에서 기쁨의 샘이 흘러넘쳐 춤을 추는 듯했다.
우리가 전차에서 내려 거리를 걷고 있는데, 내 안에서 오래된 찬송가의 후렴 부분 같은 것이 반복해서 흥얼대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이 내 간증이라네, 하나님께 영광을, 나는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이라네!” 이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이 찬송가의 후렴을 부를 때 혼자 심통이 나서 부르지 않고 앉아 있곤 했는데, 이제는 이 찬송가가 내 노래가 되었고, 나는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나를 용서하신 것을 아는 기쁨으로 가득 차서 가슴이 터질 지경이었다. 실로 깨끗해지고 가벼워지고 자유롭게 된 기분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에 속한 형제들이요 어린 자녀들로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길을 걸었고, 이제 헤어져야 할 길모퉁이까지 오게 되었다. 그는 오른쪽 길로 가고, 나는 왼쪽 길로 가야 했다. 인도에 서서 작별 인사를 하면서도 헤어지기가 싫었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나로 하여금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설교를 하셨던 그 성경적인 목사님의 집 앞에 있었다. 우리는 갑자기 뜨거운 포옹을 했다. 원래 나는 그런 성격이 아닌데, 그런 갑작스런 행동이 나와 버렸다. 마음속에서 이 아저씨에 대한 사랑이 우러나오는 것을 느꼈고, 우리 둘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도록 서로를 도와주었다는 놀라운 행복감이 찾아왔다.
우리는 오랫동안 꽉 껴안은 후 헤어졌다. 그때 나는 이 아저씨 때문에 형제 됨의 환희를 처음 알게 되었고, 그 기쁨은 하나님의 영원한 가족에 속한 모든 형제자매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마침내 서로를 놓아주며 다시 작별 인사를 하고서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 그때 나와 나이가 같았던 그 성경적으로 설교한 목사님의 아들이 창문에서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친구도 내가 교만한 위선자인 것을 알고 있었는데, 내가 더러운 부랑자를 안고 있는 것을 놀란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것에 전혀 부끄러움이 없어진 것에 스스로도 놀라면서, 그 친구에게 손을 흔들면서 새 노래를 흥얼거리며 기쁨에 차서 집으로 갔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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