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믿음의 사람들을 찾아서 분류

피터 카트라이트(Peter Cartwright, 1785-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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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09월호>

1. 피터 카트라이트는 1800년대에 미국의 최소 다섯 개 주 이상(켄터키, 테네시, 오하이오, 인디애나, 일리노이 등)에서 주님을 섬겼다. 그는 복음의 개척자인 동시에 복음전파자들을 위해 애쓴 순회설교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 무척 과격한 성품이었다. 그는 신체적으로 성장하면서, 사회적인 불의를 못 본 체하고 지나치는 성품이 아니었으므로 사람들의 눈 밖에 나기 시작했고 그리 좋은 평판을 얻지 못했다. 그는 거칠고 잔인한 개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복음을 전하는 데 적합할 리 없었다. 그런 개성으로 인해 그는 죄 가운데 살았지만,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한 후로는 그가 갖고 있던 야성조차 깨끗이 다듬어지는 생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으시다는 말씀은(롬 11:29) 진리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부르신 경우들을 볼 때면, 인간의 안목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들도 많다. 그런 경우들을 접할 때면 속단하지 말라.

그는 소년기에 켄터키 주 케인 릿지(Cane Ridge)에서 열린 장로교 야외 복음전도집회에 갔다가 그날 거기에서 구원받았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가 감리교회에 출석하고 있었기에 어머니를 따라 그 감리교회에 출석했고, 출석하자마자 즉시 주님을 섬기기 시작했다. 보라! 우유부단한 나머지 자신의 현실을 고려하고 또 고려하다가 시간을 낭비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으신 분이시기에 각 사람에 관해 잘 알고 계시며 원하시면 그 사람을 부르실 수 있다. 그가 부르심에 순종하면 은사를 불 일듯 일어나게 하시어 그에게 합당하고 정확한 과업을 부여하시고 환경도 조성해 주신다. 그리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기회를 주시고 수행하게 하심으로 그가 주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가운데 고난을 헤쳐 나가게 하신다. 그러므로 누가 어떻게 태어나서 어떤 재목으로 자랐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고, 하나님의 부르심과 은사에 따라서 그 부르심의 목적을 차츰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의 열한 명의 제자들 중에는 갈릴리 호수의 어부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베드로는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이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이후 베드로와 일행들은 고기를 잡으려고 밤새도록 갈릴리 호수에서 수고했지만 빈손이었다. 하지만 그때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던졌더니 큰 생선이 153마리나 잡혔다. 그때 요한이 "주시다!"라고 소리를 지르자 베드로가 맨 먼저 바닷속에 뛰어들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육지에서 숯불을 피워 놓으시고 그 위에 생선을 놓고 빵도 준비해 두셨다.

베드로는 성격이 몹시 급한 제자였다. 피터 카트라이트도 성격이 급했다. 주님께서는 그런 베드로를 크게 쓰셨고, 이후 피터 카트라이트도 쓰셨다. 그가 자기처럼 거친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면, 그의 큰 주먹을 보여 주고 말도 거칠게 하면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큰 주먹으로 한 방 먹일 것 같은 표정으로 복음을 전했다는 일화를 피터 럭크만 목사가 쓴 글에서 본 적이 있다.

주님께 붙잡힌 베드로가 쓴 베드로전후서를 보라! 지상에서 쓰임 받은 그 어떤 신학자나 설교자보다도 더 깊고 더 오묘한 진리의 진수를 기록하지 않았던가?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이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며, 풀은 마르고 꽃은 져도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남아 있음이라. 이것이 너희에게 복음으로 전해진 말씀이니라』(벧전 1:23-25). 『자유롭게 행하되 너희의 자유를 악의 구실로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종들로서 사용하라.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왕을 존경하라』(벧전 2:16,17). 『그가 친히 나무에 달린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죄들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낫게 되었느니라』(벧전 2:24). 『우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혐오스런 우상 숭배를 행하여 이방인들의 뜻을 행한 것은 지난날의 생활로 충분하도다』(벧전 4:3).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난을 받는 사람들은 선을 행하면서, 신실하신 창조주께 그들의 혼을 지키시도록 맡길지어다』(벧전 4:19).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 이는 너희의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기 때문이니라. 믿음 안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 5:8,9). 『이로써 우리에게 지극히 크고 귀한 약속들을 주심은 너희로 하여금 이 약속들을 통해서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타락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동참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뿐만 아니라 너희가 더욱 전심전력하여 너희의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 1:4-7). 『그러나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들이 굉장한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우주의 구성 요소들이 맹렬한 불로 녹아내리며 땅과 그 안에 있는 일들이 타버릴 것이라. 그때 이 모든 것이 녹아 버리리니 너희가 모든 거룩한 행실과 경건에 있어 어떠한 사람들이 되어야겠느냐?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열망하라. 그때는 하늘들이 불에 타서 녹아 버리고 우주의 구성 요소들도 맹렬한 불에 녹아내릴 것이나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거하는 새 하늘들과 새 땅을 기다리도다』(벧후 3:10-13).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지 않는 자들은 실업자와 삯꾼 목사들이다. 이 땅의 목사들은 먹고살기 위해 강단을 택한 자들이다. 그들의 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들의 배다(롬 16:18, 빌 3:19).

2. 피터 카트라이트는 신학교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킹제임스성경>을 읽었다. 그리고 기도했으며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다. 그 당시 미국의 감리교회들은 사람들을 구령했다. 그것이 교회가 이 땅에 존립하는 의의이고 목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죽은 성도들로부터 유산을 넘겨받은 교회들은 배가 불러서 복음에는 관심이 없다. 죽은 교회들이 많은 것이다. 이 나라처럼 복음을 전하지 않고 구령하지 않는 교회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아니다. 교회 건물을 크게 짓고, 교단을 확장하기 위해 안수를 남발하여 교회 수를 늘리면서 세상에다 자랑을 늘어놓는 교단 교회들 안에는 주님께서 계시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신학교 졸업생들의 등에다 도장을 찍어 내보내는데, 이는 복음도 전하지 못하는 자들이 먹고살기 위해 제단의 뿔을 움켜쥐고 있는 형국이다. 피터 카트라이트는 미개척지에서 오직 주님만 의지하여 홀로 서서 외쳤던 파수꾼이었다.

1802년 그가 17세 때 요즘 같으면 "구령자"(Exhorter) 인증서를 감리교회에서 받았다. 그 후 가족들이 루이스턴(Lewiston)으로 이사했고, 곧이어 그는 그곳의 정규 감리교 순회설교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처음에 잘못된 전통을 배워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침례 대신 세례를 줌으로써 침례교의 설교자가 되지 못했고 감리교에 머물러서 구령만 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교회가 없었던 컴벌랜드 산맥의 한 집에서 그가 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당시 그 집에서는 댄스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파티가 무르익어 갈 무렵 젊고 예쁜 처녀가 그 집을 방문한 그에게 춤을 추자고 제안했다. 그는 그 처녀의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와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춤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복을 구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그 처녀의 손을 잡은 채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바이올린을 켰던 연주자는 부엌으로 들어갔고 다른 사람들은 대문 밖으로 나갔으나, 그 자리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기도에 동참했다. 그렇게 해서 파티는 끝나고 말았는데, 그날 15명이 구원을 받았다. 피터 카트라이트는 그들을 위해 교회를 시작했다.

1824년 그의 가족은 켄터키 주에서 일리노이 주로 이사를 했고, 이사를 하던 중에 썩은 나무가 넘어져 그의 딸이 치여 죽었다. 그는 일리노이로 이사 온 이후 남은 생애를 거기서 살았다. 그는 계속해서 순회설교 여행을 했다. 1828년과 1832년에는 일리노이 주 의회 하원의원으로 출마하여 아브라함 링컨을 이기고 두 번 당선되었으나, 1846년에는 연방 하원의원에 출마했다가 링컨에게 패배했다. 한번은 아브라함 링컨이 피터 카트라이트의 집회에 참석했는데 초청에 응하지는 않았다. 그가 링컨에게 "하늘이나 지옥 중에 어느 곳으로 가겠느냐"라고 물었더니 링컨은 의회로 가겠다고 대답했다.

1872년 피터 카트라이트의 지상 생명이 끝나갈 무렵, 그의 가족은 50명의 손자들과 36명의 증손자들, 7명의 고손자들이 있었다. 그는 11개의 순회설교 지역을 여행하면서 군 단위의 12개 지역을 돌아다녔다. 그러는 동안 14,000번을 설교했고 12,000명에게 침례를 주었으며 장례식에서는 500번 설교했다.

1872년 9월 25일, 그는 87세를 일기로 일리노이 주 플레전트 플레인스(Pleasant plains)에서 잠들었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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