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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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3년 01월호>

성경을 변개시킨 사람들의 원리와 절차와 학설이 성도들의 사고를 구석구석까지 감염시켜서 끝내는 영적인 흉년을 몰고 왔다. 사도 바울은 이미 A.D.60년 경에 하나님의 말씀에 변개를 시도한 사실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킴으로써 이익을 취하는 여러 사람들과 같지 않고』(고후2:17). 여기서 “변개”란 말은 ‘썩게 한다’는 의미이며, 희랍어 “카페레우오”( καπηλευω)는 ‘상품을 속여 파는 행위를 한다’는 뜻이다. 즉 ‘사기를 친다’는 의미이다. 주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 그의 원수가 와서 곡식 사이에 독보리를 뿌리고 가버리니』(마13:25)라고 하셨다. 여기에 중요한 교훈은 그 독보리가 곡식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처럼 위선자들은 그리스도인들과 똑같이 보이며 행동하고 있다. 거짓 선생들이 성도와 같은 외관을 갖추고 다가서면 성숙한 성도들도 구별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이제 갓 구원받은 성도들이나 아직 거듭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는 식별할 분별력 조차도 없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또 갈라디아서에서도 『다른 복음을 따르게 됨을 이상히 여기노라』고 했다. 어떤 사람들이 복음을 변개시키려 한다는 점과 우리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갈1:6-8). 에베소서 4:14에서는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는 더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니 사람들의 속임수와 교활한 술책으로 그들이 속이려고 기다리는 온갖 교리의 풍조에 밀려 이리저리 다니지 아니하고』라고 강조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고 했다(요6:63). 또한 히브리서 4:12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양날이 있는 어떤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그리고 관절과 골수를 찔러 가르고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판별하느니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은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을 낳기에 충분하며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연유되기 때문이다(롬10:17).
역사를 통관해 보면 성경을 변개시킨 사람들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자연인(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일들이 그 사람에게는 어리석게 여겨지기 때문이요, 또 알 수도 없나니, 이는 그 일들이 영적으로만이 분멸되기 때문이니라』(고전2:14).
먼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자기 지식 속에 하나님을 모실 만한 의욕이 없기 때문에 타락한 마음 그대로를 허용해 버린 것이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받는 불행이요, 저주이다. 영으로 거듭나서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사탄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안에 있는 무지와 그들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다(엡4:18). 그래서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워졌으며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 의하여 가리워진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기록했다. 그들 가운데 이 세상의 신(사탄)이 믿지 않는 자(거듭나지 않은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한 것이다(고후4:3,4).
성경의 전달과정도 두 개의 흐름을 타고 왔다. 두 개의 흐름은 엄격히 말해 두 개의 종교제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제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권위에 둔 사람들이고, 또 다른 제도는 그 말씀 위에다가 어떤 종교적인 의식과 전통이나 인간적인 이론을 덧붙혀 놓는 것이다. 또 이러한 전통이나 인간적인 이론을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하게 다루려는 풍조인 것이다.
예를 들면, 1546년의 트랜트 종교회의에서는 53명의 고위 성직자들이 소위 외경들을 기록되지도 않은 전통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경외함을 받도록 하는 칙령을 선포했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기에 앞서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 명령이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며』(마28:19).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침례가 세례로 바뀌었다. 사실 유아세례란 성경에 없는 것이며, “세례”라는 말조차도 없다. 이렇게 변질된 대체물을 가리켜 ‘전통’이라고 한다. 이는 세례를 주라는 말이 성경에는 없기 때문이다. “밥티죠”(βαπτιξω)라는 말은 분명히 “잠긴다”는 뜻으로 ‘침례’이다. 그러나 기존의 신약성경에서 115군데의 침례가 모조리 세례로 되어 있다. 이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하루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잡수심으로 장로들의 전통을 어겼다고 지적했다. 예수님께서는 응수하시기를 어찌해서 너희들은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느냐고 하시면서 사람들의 명령을 하나님의 교리라고 가르친다는 점을 지적하여 훈계하신 적이 있다(마15:3).
어떤 교회는 교회 건물을 이스라엘의 성막 정도로 알고 있어서 특히 강단 위에는 함부로 올라가지도 못하게 하며 심지어는 신발까지도 벗고 올라가게 되어 있다. 교회 건물은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하기 때문에 경건한 곳이다. 그러나 모임이 중요한 것이지 건물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니다. 만일 그 건물을 교회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수퍼마켓도 될 수 있으며 창고로도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예배를 보기 위해 강변이나 산비탈에 모였다고 해서 교회가 아닌 것도 아니다. 교회는 불러낸 모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초상화가 나온 이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 초상에다 경배하여 그 그림이나 동상을 섬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또 십자가는 어떤가. 성경책은 어떤가? 책도 하나의 우상물이 되었다. 그것은 책이다. 그 안에다 줄을 그어도 글씨를 써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낡아 없어지면 버리고 다시 사면 되는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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