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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본 증거와 원문 성경 분류

70인역의 망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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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2년 07월호>

저명한 신학자들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화적인 “70인역”의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권위와 판단의 기준으로 70인역을 제시하지만 그 실상은 근거없는 거짓임을 살펴 보고자 한다. 다음 글은 피터 라크만(Peter S. Ruckman)의 저서 『필사본 증거』(Manuscript Evidence)를 근거로 해서 쓴 것이다. 『필사본 증거』는 현재 말씀보존학회에서 영문판권을 가지고 보급하고 있으며, 이미 번역 되어 출판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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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까지 A.D.300년 이전에 있었던 구약의 헬라어 번역본을 찾아 낸 신학자는 아무도 없다. 즉 B.C.250년 경에 “70인역”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어떤 헬라어 번역본도 발견되지 않았다. 단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구속을 이루신 이후 200-400년 동안의 기간에 기록된 필사본들을 가지고 신약성경에 나타난 구약 인용과 일치시키면서 허상일 뿐인 70인역의 전설을 사실로 만들어 가고 있을 뿐이다. 이는 유세비우스의 시내사본과 바티칸사본,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사본, 네슬-알란드의 사본, 연합성서공회 사본 등과 이 사본들에서 번역된 새미국표준역본(NASV)을 비롯한 영어 성경들과 한글 개역성경을 포함해서 현존하는 한글 성경들의 구약 인용이 “70인역”에서 인용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사본들과 성경들의 모체가 오리겐이 변개시킨 “70인역”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A.D.300년 이전에 헬라어로 된 모든 구약의 번역본이 있었다는 유일한 증거로 제시될 수 있는 것은 “헥사플라”(Hexapla)-오리겐이 편수한 6란성경- 뿐이다. 그러나 헥사플라는 신약이 완성되기 전에 존재하지 않았다(헥사플라에 관해서는 차후에 상세히 설명할 것이다). 그래서 참된 성경원문의 보존을 다루며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간교하게 위조된 헬라어 번역본이 바로 “70인역”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전에 있었던 70인역에 대한 ‘위대한’ 권위자들의 축적된 저작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사역 이전이나 사역 동안에 “70인역”이나 혹은 그와 같은 어떤 것이라도 존재했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일찌기 발견된 사본들 가운데서 구약의 헬라어 성경에 가장 가까운 것은 신명기 23-28장까지의 일부를 담고 있는 라일랜드 파피루스 458번(Ryland Papyrus No.458)이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파피루스 조각들은 B.C.150년의 것으로서 소위 “70인역” 보다 50에서 100년 후의 사본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들이 70인역의 파피루스를 제시할 때 언급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죽으신 이후에 200년이 지난 뒤부터 기록된 24개의 조각들에 불과하다. 학자들이 궁색하게 제시하는 70인역의 파피루스 조각들의 이름과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베를린 창세기(Berlin Genesis) : A.D.200-400년의 것으로 창세기 일부분을 담고 있다.
2. 암허스트(Amherst) : A.D.200-400년의 것으로 창세기 일부분을 담고 있다.
3. 대영 박물관(British Museum) : A.D.200-400년의 것으로 창세기 일부분을 담고 있다.
4. 옥시린쿠스(Oxyrhyncus) : A.D.200-400년의 것으로 창세기 일부분을 담고 있다.
5. 보들리안 파피루스(A Bodleian papyrus leaf) : A.D.600-750년에 기록된 것으로 솔로몬의 노래의 일부분을 담고 있다.
6. 암허스트 파피루스(An Amherst papyrus) : A.D.600-700년에 기록된 것으로 욥기 1,2장의 부분을 담고 있다.
7. 암허스트 파피루스(An Amherst papyrus) : A.D.400-550년에 기록된 것으로 시편 5편 부분을 담고 있다.
8. 프라그멘타 론디넨시아(Fragmenta Londinensia) : A.D.600-750년에 기록된 것으로서 시편 10, 18, 20-34편의 부분들을 담고 있다.
9. 대영 박물관 “230”(British Museum “230”) : A.D.220-300년에 기록된 것으로 시편 40:26-41:4을 담고 있다.
10. 베를린 파피루스(A Berlin papyrus) : A.D.250-400년에 기록된 것으로 시편 12:7-15:4을 담고 있다.
11. 옥시린쿠스 파피루스 “845”(Oxyrhyncus papyrus “845”) : A.D.300-500년에 기록된 것으로 시편 68, 70편의 부분들을 담고 있다.
12. 암허스트 파피루스(Amherst papyrus) : A.D.600-700년에 기록된 것으로 시편 108, 118, 135, 138, 139, 140편의 일부분들을 담고 있다.
13. 라이프찌히 파피루스(Leipzig papyrus) : A.D.800년 경에 기록된 것으로 시편의 일부분을 담고 있다.
14. 하이델베르크 코덱스(Heidelberg Codex) : A.D.500-600년에 기록된 것으로서 스가랴 4:6 - 말라기 4:5을 담고 있다.
15. 옥시린쿠스 “846”(Oxyrhyncus “846”) : A.D.500-600년에 기록된 것으로 아모스 2장 부분을 담고 있다.
16. 라이너 파피루스(Rainer papyrus) : A.D.200-300년에 기록된 것으로 이사야 38장을 부분적으로 담고 있다.
17. 보들리안 파피루스(A Bodleian papyrus) : A.D.200-300년에 기록된 것으로 에스겔 5-6장 부분을 담고 있다.
18. 라일랜드 파피리(Rylands papyri) : A.D.1300-1400년에 기록된 것으로 신명기 2,3장을 담고 있다.
19. 라일랜드 파피리(Rylands papyri) : A.D.550-700년에 기록된 것으로 욥기 1,5, 6장을 담고 있다.
20. 라일랜드 파피리(Rylands papyri) : A.D.400-600년에 기록된 것으로 시편 90 편을 담고 있다.
21,22. 옥시린쿠스 두루마리(Oxyrhyncus volumes) : A.D.200-300년에 기록된 것으로 출애굽기 21, 22, 40장을 담고 있다.
23. 옥시린쿠스 두루마리(Oxyrhyncus volumes) : A.D.200-300년에 기록된 것으로 창세기 16장 부분을 담고 있다.
24. 옥시린쿠스 두루마리(Oxyrhyncus volumes) : A.D.300-400년에 기록된 것으로 창세기 31장을 담고 있다.
이와 같이 “70인역 파피루스”는 200-800년 동안 기록된 조각들을 모은 것이다. 이것들이 70인역과 유사하다고 하는 어떠한 연관을 짓기에는 너무도 큰 시간적 차이가 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70인역이 존재했으며 사도들이 이를 참고했었다고 믿고 가르치고 답하는 사람들은 전설적인 아리스테아스의 서신(The Letter of Aristeas)과 신약성경이 완성된 이후에 만들어진 변개된 사본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24개의 필사본 조각들 가운데 어떤 것으로도 예수님 이전에 70인역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없다. 그런데 최근에 발견된 그렌펠(Grenfell), 페트리에(Petrie), 헌트(Hunt)의 파피루스를 포함하여, 이들 파피루스 조각들이 “70인역”이라고 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것들은 다음과 같다.
1. A.D.150년에 기록된 민수기와 신명기 부분
2. A.D.230년에 기록된 이사야 부분
3. A.D.350년에 기록된 창세기 8,24,25,30-47장 부분
4. A.D.350년에 기록된 창세기 9:1-44:22 부분
5. A.D.390년 경에 기록된 창세기 1-35장 부분을 담고 있는 파피루스 911(Papyrus 911)
이처럼 때때로 구약 성경의 파피루스가 발견되는데 헬라어역 구약 성경이 발견될 때마다 “70인역”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즉시 그것을 분류한다. 즉 그들은 예수님 이전에 70인의 유대인에 의하여 헬라어 완역 구약 성경이 있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우리가 이미 아리스테아스의 서신과 ‘70명’과 ‘72명’에 관해 살펴본 것만으로도 반증되기에 충분하다. 이들은 단지 70인역의 전설적이고 신화적인 이야기에 현실을 짜맞추는 퍼즐게임을 하고 있는 것으로써 24개의 조각들을 제시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기원전 4세기 경부터 사도 바울의 회개에 이르기 까지 성경대로 믿는 히브리인은 하나님께서 주신 완전하고 권위있는 히브리 성경을 사용했고(롬3:1-4),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바울 등은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헬라어 신약을 기록했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 이단들은 “70인역”을 가지고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에언의 말씀을 헬라철학으로 재구성하여 단순히 개인적인 기록으로 평가하려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롬 11:20,25; 렘 33:24).
체스터 비티(Chester Beatty)의 파피루스 모음집에 의하면 신약성경이 완성된지 오랜 뒤에 누군가가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려고 시도한 흔적 외에 증거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늘날 대다수의 신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제시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70인역의 실제 기원은 이렇다. 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필로, 클레멘트, 판태누스, 오리겐)은 그들이 성경을 인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며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지 않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여 단지 요셉의 아들로 가르쳤던 사람들이다. 이 가운데 초기 변개의 최고 공로자인 오리겐은 이전에 있었던 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의 맥을 이어 변개된 성경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헥사플라이다. 이 헥사플라( 6란 성경)의 5섯 번째 란이 바로 오리겐이 직접 변개시켜서 만든 70인역이다. 그후 오리겐의 추종자였던 유세비우스가 오리겐의 저작과 70인역을 근거로 시내사본과 바티칸사본을 만들었으며 여기서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사본, 네슬-알란드 사본, 킹 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영어 성경들, 새성경을 제외한 한글 개역성경과 현존하는 한글 성경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려버린 “70인역”의 신화에 오늘날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현혹되어 속고 있다. 이제 신학자들이 어떻게 70인역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고 있으며 어떻게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계속> BB

조승규, 성경의 역사 4, “ 70인역 ”의 망상, 92년 7월호(통권 4호),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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