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필사본 증거와 원문 성경 분류

알렉산드리아 이단의 대표적인 구성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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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05월호>

1. 아다만티우스 오리겐
(Adamantius Origen, 154-254 A.D.)

오리겐은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기독교 학교의 교사였다. 그는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곳마다 성경을 고쳤다. 오리겐은 목사(pastor)를 제사장(priest)이라고 말하고, “바깥 흑암”은 “무지”를 뜻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세례에 의한 중생을 믿었고,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천년왕국과 이스라엘의 재건을 믿지 않았으며, 창세기 3장은 누가복음 4장과 마찬가지로 신화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리겐은 <킹제임스성경>을 만들 때 사용된 다수필사본을 입수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변개된 알렉산드리아 사본을 사용했다.
오리겐은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는 “교양있는 기독교 교육자”였다. 필립 샤프는 오리겐이 재능과 교양, 통찰력, 기지, 학식 등을 갖춘 탁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미국표준역본>(ASV, 1901)의 개정위원회장이었던 샤프는 에라스무스 역본은 가치가 없다고 무시하고,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역본(70인역)은 가장 정확한 번역본이라고 말했다. 웨스트코트와 홀트와 라잇풋(Lightfoot) 감독도 알렉산드리아 역본이 가장 정확하다고 말했다.

2. 아우렐리우스 어거스틴
(Aurelius Augustine, 354-439 A.D.)

어거스틴은 A.D. 100-300년 사이에 기록된 알렉산드리아 사본이 영감받은 것이며, 외경(Apocrypha)도 성경의 일부분이고, 어린 아기들도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영세를 받으면 구원받기로 예정된 것이라고 믿었다. 어거스틴은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에 사용된 다수필사본들을 입수하거나 사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리겐과 유세비우스가 만든 알렉산드리아 사본을 선택했다. 오리겐과 마찬가지로 어거스틴도 북아프리카인이었다. 어거스틴은 초기 침례교도들인 도나티스트들을 박해했다.
어거스틴이 번역한 사본에는 알렉산드리아 종파의 대표적 사본(바티칸사본)처럼 외경이 포함되어 있었다. 오리겐이나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삭제하거나 그 말씀에 자신의 의견을 삽입하라고 명령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의 많은 부분을 그렇게 다룬 것이다. 어거스틴은 이스라엘의 재건이나 휴거, 적그리스도, 천년통치, 그리스도의 심판석 등에 관한 부분을 삭제했다. 그에게 있어 “하나님의 도성”(City of God)은 로마 카톨릭 교회를 의미하는데, 그것은 사실 요한계시록 17장에 기록된 창녀교회이다.
어거스틴은 배교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배교적 근본주의자 중 한 사람으로서, 밥존스 대학의 모든 강령과 웨스트민스터나 하이델베르크 카톨릭 교리문답서의 내용을 믿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왜곡한 파괴적인 비평가였다. 우리가 최종권위에 관한 한 그의 말을 조금이라도 따른다면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어거스틴에게 있어 구약의 외경은 구약성경과 동등한 권위였다. 또 그가 주장한 교회는 신약성경과 동등한 권위였으며, 그의 철학적 사고들 또한 성경과 동등한 권위였다. 어거스틴은 전형적인 기독교 학자요, 교육자였던 것이다.

3. 암흑시대의 교황들

중세 암흑시대에 살았던 교황들은 대부분 구라틴역본(Old Latin)을 제롬이 개정하여 만든 라틴 벌게이트(Vulgate)역을 사용했다. 그들이 사용한 신약 필사본들은 오리겐이 만든 변개된 알렉산드리아 필사본들이었으며, 그들 교황들은 구라틴역본을 입수하는 대로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제롬이 편집한, 유세비우스와 콘스탄틴의 알렉산드리아 역본(70인역) 외에 다른 성경을 가진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사형시켰다.
교황들과 더불어 콘스탄틴 황제도 알렉산드리아 이단의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콘스탄틴 황제는 카이사랴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던 오리겐의 6란성경(Hexapla)을 50권 갖고자 하였고, 유세비우스가 이것을 콘스탄틴 황제에게 만들어 주었다. 유세비우스는 니케아 공의회가 열렸을 때 아리안파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또 그는 콘스탄틴을 예수 그리스도나 사도들과 동등시했고(유세비우스의 <교회사>를 참조하라.) 자신은 죽은 후에도 여전히 이 세상에 존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콘스탄틴은 세례에 의해 종교의 “신비”에 접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기 직전에 세례를 받았다. 콘스탄틴은 세례와 거듭남을 분리해서 말한 적이 없다. 즉 세례를 통해 거듭난다고 가르쳤다. 콘스탄틴이 가지고자 원했던 성경은 외경이 구약의 일부분으로 포함된 것이다. 유세비우스는 오리겐의 6란성경을 필사하는 과정에서 신약에도 외경을 포함시켰다. 시내사본과 바티칸사본에는 2000년 교회사 동안 올바른 그리스도인이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는 외경이 포함되어 있다.
알렉산드리아 이단의 대표적인 구성원들


4. 웨스트코트와 홀트

교회사에 있어서 가장 규모가 컸던 신앙부흥기(필라델피아 교회시대, 1600-1800) 이후, 전세계 주요 국가들에 복음이 전파된 이후, 선교단체와 주일학교 및 소책자협회, 성경협회, 선교훈련센터들의 설립 이후 갑자기 성공회 감독 두 사람(웨스트코트와 홀트)이 영국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모든 사람의 영혼에 책임을 지는 책이 다른 책으로 대치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1881-1884년에 만들어진 영어 개역성경, RV).
이 두 사람은 “현대인의 언어”(이 말은 존 R. 라이스나 로크만 재단이나 밥 존스 대학교 등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말이다.)로 만들어진 새로운 개역성경(RV)이 <킹제임스성경>과 신약에서만 5,300-5,800군데가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개역성경(RV)을 믿을 만한 성경이라고 말했다. 영어 개역성경(RV)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품과 사역에 관한 구절을 162 군데나 바꾸었다.
웨스트코트와 홀트는 한 번도 자신들이 거듭난 경험에 대해 고백한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성경개정위원회에 유니테리언 교도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이들은 또 자신들이 선호하는 희랍어 성경을 성경개정위원회에 몰래 가지고 들어 왔다. 이들은 로마 카톨릭의 지지자들이었다.
웨스트코트와 홀트는 개역성경을 만들 때 콘스탄틴과 유세비우스와 오리겐과 어거스틴이 사용한 사본들을 선택했다. <킹제임스성경>이 전세계에 보급되고 가르쳐짐에 따라 거의 사라졌던 알렉산드리아 이단들이 270년이 지난 후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이들의 구성원들은 커레이(Carey)나 고포스(Goforth)나 리빙스톤(Livingstone)이나 모리슨(Morrison), 저드슨(Judson), 피니(Finney), 휫필드(Whitfield), 웨슬리(Wesley), 에드워즈(Edwards) 등이 사용한 <킹제임스성경>에 31,000군데의 잘못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제는 알렉산드리아 이단의 공인 성경인 영어 개역성경(RV)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 개역성경으로 성경 말씀을 더 잘 이해하고, 현대어로 된 그 성경이 그 뜻을 더욱 분명하게 전달해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두 가지 변명은 1901년 이후에 나타난 모든 개정위원회가 사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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