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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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된 권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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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03월호>

만약 누군가가 우리에게 서로 상반되는 권위들을 내세운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동기뿐만 아니라 그가 과연 경건한 사람인지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상반된 권위를 제시하는 사람은 아무리 경건한 신학자라 할지라도 그의 경건함은 올바른 권위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일치를 외치는 자유주의자들은 교리가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기본적인 사항, 예를 들면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등을 믿으면 서로 연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대의 많은 “경건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기독교 진리의 근본 사항”,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 성도의 거듭남 등의 근본 진리만 갖추고 있으면 다른 부분에서는 어떻게 틀리든지 관계가 없으며, 더욱이 어떤 성경을 쓰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실제적으로는 서로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여러 가지 성경들이 여러 개의 권위들로 자리잡게 된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탄은 “너희가 반드시 죽지는 아니하리라.”(창 3:4)고 말했다. 바로 여기서 서로 상반되는 두 개의 권위가 등장한다. 둘 중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 죽을 것인가 죽지 않을 것인가의 상황 속에서, 어느 쪽을 택해야 안전할 것인가?
최종권위가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문제는 이와 같다. 따라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절대 권위에 대한 문제는 어떠한 기본적 교리보다 더 중요하다. 심지어 사람들의 혼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일보다도 더 중요하다. 물론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특권을 주신 것도 감사드린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해 주신 것도 감사드린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하나님이 인정하신 유일하신 권위인 성경을 통해서 확인되지 않고서는 결코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최종권위”에 대한 문제는 그 어떤 문제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성경과 연관된 모든 문제와 가르침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인가 아닌가를 분별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렘 23장). 단적으로 말한다면 어떤 책에 근본적인 진리들이 들어 있는 동시에 많은 오류들도 포함되어 있다면, 그 책은 실제적으로 이교도의 미신에 불과하며, 사실상 “기독교의 근본 진리”는 하나도 없는 책이 되고 만다.
많은 신학자들이 주장한 모든 “근본 진리들”은 우리 주님이 탄생하기 이전에도 로마, 그리스, 인도, 바빌론 신비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거룩한 어머니”나 동정녀 탄생 등의 교리는 그들에게도 있었다(알렉산더 히슬롭의 <두 개의 바빌론> 참조). 문제는 우리가 그러한 근본 진리들을 확인하고 믿고 전파할 수 있는 최종권위를 갖는 것이다. “근본 진리들”이나 혹은 다른 문제들을 판단함에 있어서 정확한 성경과 오류가 있는 성경이 서로 상충될 때, 그 성경들은 그 문제에 있어서 서로 상반된 “최종권위들”로 등장하는 것이며, 어느 하나가 그 진리를 잘못되게 혹은 정 반대로 제시해 주고 있다면 그 책은 가짜 성경이 되는 것이다.
최종권위는 언제나, 어디서나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모든 근본 진리들은 최종권위에서 나왔기 때문에 근본 진리들은 최종권위의 부산물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최종권위에 대해 정확한 자세를 취하지 않고 근본 진리들만을 붙들고 있다면 그는 결국 “잘못된 근본 진리”들을 붙들 수도 있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서로 상반되는 두 권위가 천거될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는가?
알렉산드리아 이단인 어떤 사람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는 <킹제임스성경>을 믿는 성도들에게 그 책에 대한 의심을 심어 주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다. 예를 들어 최종권위에 관한 질문이 나오기만 하면 알렉산드리아 이단들은 즉시 헬라어 <표준원문>이나 <킹제임스성경>의 개정판들에 차이점들이 있기 때문에 이들도 모순되는 권위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할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 호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이제, 아래와 같은 두 가지의 상반되는 권위가 교회에 의해 추천되거나 인정될 때 나타나는 현상을 살펴보자.

1. 교부들의 전통 대 신약성경
2. 교회협의회(NCC) 대 신약성경
3. 교황의 발언 대 신약성경
4.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본문에 관한 이론 대 신약성경
5. 헬라어 문법학자들 대 신약성경
6. 유태인의 탈무드 대 구약성경
7. 은사주의자들의 “개인적 체험” 대 신약성경

사탄은 이브에게 “참으로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느냐?”(창 3:1)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렇지 않다. 그러니 내 말을 들어라.”(창 3:1-4)고 결론을 내려 주었다. 어떤 근본주의자가 두 개 이상의 권위를 천거하거나 인정할 때 그의 동기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근본주의자는 우리가 하나님 말씀 대신에 자기 말에 귀기울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오리겐으로부터 밥 존스 3세에 이르기까지 모든 알렉산드리아 이단들은 그 수법을 이용한다. 또 이것이 이들이 하나님 오직 한 분만을 따르며 성경만을 최종권위로 믿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이유이다. 이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따르기 원한다. 현대의 근본주의자들이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을 “맹신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관습과 제도를 앞세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는 것을 “맹신”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성경을 그들의 배나 만족시켜 주는 교육제도보다 우위에 둔다면, 그 때에야 그들의 눈에도 성경이 “숭배의 대상”이 될 것이다.
최종권위를 뒤엎기 위해서는 항상 두 가지의 권위가 추천된다. 근본주의자들은 배교한 자유주의자가 되기 전에 매우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그들은 성경과 동일한 위치에 다른 사물이나 다른 인물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그 사물이나 인물이 성경의 권위와 충돌하는 바로 그 순간, 그는 성경의 권위를 저버린다. 미국의 인정받는 신학대학들이 <킹제임스성경>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그것과 3만 군데 이상이 다른 새로운 번역본들을 추천하고 보급하는 이유는 바로 <킹제임스성경> 하나만을 최종권위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목적은 다양한 번역본들을 <킹제임스성경>과 상충하게 만들어, 학자나 학교를 그 성경들을 판별하는 최종권위의 자리에 올려 놓기 위해서이다.
단 한 가지의 성경만을 최종권위로 인정하는 사람은 결코 자유주의자가 될 수 없다. 신복음주의자들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의 권위를 의심한 후에 신복음주의의 길로 빠지게 되었다. “정통 신앙의 요새”(유명한 신학대학들)가 자유주의자나 신복음주의자들을 향해 가하는 어떠한 비난도 이들이 자유주의나 신복음주의에 빠지게 된 원인과 과정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한다면, 그 비난은 부정직하고 불건전하며 믿을 수 없고 비성경적인 것이다. 하일스-앤더슨 대학, 밥 존스 대학, 달라스 신학 대학원, 무디 성경 학교 교수들이 이 문제에 관해 전혀 토론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이미 배교의 처음 두 단계를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배교의 처음 두 단계는 다음과 같다.

1. 최종권위에 대한 혼란과 우유 부단함과 불신과 불확실성을 초래하도록 둘 이상의 권위를 동등하게 내세우 는 것.
2. 성경의 기록된 증거에 대해 끊임없이 거짓말하는 것(과월호에서 언급한 알렉산드리아 이단들이 사용하는 거짓말들).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하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만을 제시한다. 그러나 “믿을 만한 번역본”들의 다른 구절들에서는 마리아와 사도들에게도 기도할 만한 근거를 마련해 준다. 성경은 구속과 죄의 용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씀한다(골 1:14). 그러나 “경건하고 훌륭한” 학자들이 추천한 다른 권위들은 그 구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삭제해 버린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셨다(딤전 3:16)고 말씀하시는데, “근본 진리에 충실한” 다른 번역본들은 이 구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깎아내렸다.
두 권위가 서로 충돌하는 곳에서는 또 다른 제 삼의 권위가 결정을 내리는 재판관이 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해서 교육받은 경건하고 헌신된 학자들의 무리가 제 삼의 권위, 실제적 최종권위가 되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상충된 권위들 때문에 중세 암흑시대가 도래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상충된 권위들을 추천하고 판단하는 또다른 권위에 의해서 마지막 때의 영적 기근이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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