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성경 총론 분류

의도적인 오류를 부정하는 비평가들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1년 02월호>

정을기 목사가 그의 글에서 유포시킨 거짓 주장은 다음과 같다. [인용문에 제시된 “정을기 #6,7” 등과 같은 표식은 본 논의의 정리를 위한 필자의 표기이다.]
[정을기 6] 약 300,000개에 이르는 신약성경 필사본들 안에서 발견되는 오류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을 할 수 있다. 하나는 오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의도적인 오류로서 필사자가 무의식적으로 단순히 실수를 하여 발생한 오류들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의도적인 오류인데 이는 필사자가 의도적으로 본문을 수정한 경우를 말한다. 이 경우는 문법을 수정한 경우, 본문 융합, 교리적 수정들이 있다. 교리가 수정이 된 경우는 주로 보수적인 정통적 견해를 강조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정을기, “킹제임스 영어번역본주의자들에 대한 반론,” 현대종교, (국제종교문제연구소, 2000년 1월호), pp.21,22.


정목사의 글은 D.A. 카슨과 브루스 메츠거의 책을 축약해 놓은 정도인데, 오류에 관한 항목은 그들의 책을 요약해 놓은 수준도 못된다. 정목사의 주장이 틀린 이유는 그가 이들을 답습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목사가 틀린 부분은 카슨의 책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며, 카슨의 주장 역시 틀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카슨도 잘못된 주장과 편견으로 일관된 메츠거의 책을 답습했기 때문이다. 결국 파괴적 비평가들이 서로 양산해 놓은 거짓말들을 그대로 답습함으로써 거짓이 사실처럼 유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목사의 글은 물론 카슨의 책과 파괴적 비평가들 가운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메츠거의 책에 제시된 주장들 역시 평가해야 한다.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정목사는 의도적인 오류들 가운데 문법을 수정한 경우, 본문 융합, 교리적 수정들만을 언급하고 설명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오류들에 대해 카슨과 메츠거의 주장에 나타난 문제들을 평가하고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미 이들의 거짓말에 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다.

1. 의도적인 오류를 비의도적인 오류로 왜곡한다.

성경 변개란 사실상 “의도적인” 변개를 말한다. 그러므로 의도적인 변개에 대한 바른 판단은 성경 변개에 대한 바른 평가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파괴적 비평가들은 이 부분에 대해 매우 실망스러운 주장을 펴고 있다. 다음의 인용은 카슨과 메츠거의 “비의도적인 오류와 의도적인 오류”에 대한 한 설명이다.
[카슨 #3] “때때로 정직한 판단의 오류들이 다른 오류를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다. 가령, 만약 어떤 필사자가 우연히 한 절이나 몇 개의 단어들을 빠뜨렸다면, 교정하는 사람은 그것을 각주로 기록할 것이다. 그 다음 번 필사자가 이 사본을 복사하면서 다시 그 단어를 본문에 넣되 잘못된 위치에 집어 넣을 수도 있다. 또 다른 경우, 각주에 있는 관주들은 본문의 일부라기보다는 단지 서기관의 언급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본을 복사한 필사자는, 그가 필사하고 있는 새로운 복사본에 그 관주를 집어넣음으로써, 있어서는 안될 것을 성경 본문에 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에는 어떤 악의적인 의도나 본문을 변질시키려는 의도는 없고 단지 판단의 오류만이 있을 뿐이다.” D.A.카슨 지음, 송병현, 박대영 역, 킹제임스버전 성경의 오류, (도서출판 이레서원, 2000), p.27.

[카슨 #4] 의도적인 변경들은 [비의도적인 오류들과는] 다른 종류의 이본(異本)들을 형성한다. 비록 이러한 경우 필사자가 자기 앞에 있는 필사본의 본문을 바꾸기로 작정하지만 (intends to)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다수의 경우들에 있어서 필사자가 틀리다고 생각하는(thinks) 것들을 바꾼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여기서 필사자가 어떤 본문에 대해] “틀리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필사자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한다(feels)는 의미가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이전의 필사자가 변개시켰다고 생각하는 본문들을 바꾼다는 의미이다. 카슨, Ibid., pp.28,29. D.A. Carson, The King James Version Debate, (Grand Rapids, Mich.: Baker Book House, 1981), pp.23,24.

[메츠거 #1] “4. 판단의 오류들. 아마도 다음의 몇몇 예들은 교리적인 이유들로 인해 유입된 고의적인 변경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될 수 있겠지만, 때때로 어리석거나 졸았던 서기관들을 제외하면 선한 의도로 수행된 비의도적인 오류들로 여길 수 있다.” Bruce M. Metzger, The Text of the New Testament,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2), pp.193-194.


위의 인용 #3에서 보는 바와 같이 카슨은 전적으로 자신의 추측에 근거해서 오류에 대해 논하고 있으며, 문장이 모두 가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갑자기 마지막 문장에서 “이러한 일에는 어떤 악의적인 의도나 본문을 변질시키려는 의도는 없고 단지 판단의 오류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단정적인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이 결론은 계속된 앞 문장들의 가정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허황된 것이다. 본문의 단어나 표현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 그것도 필사자가 이것은 옳고 저것은 틀리다는 “판단”을 분명하게 한 상태에서 본문을 변경한 것을 두고서 “의도적이지 않은” 변경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또한 카슨의 인용 #3은 인용 #4와 분명히 모순된다. 인용 #3에서 “판단”이라는 말은 인용 #4에서 “작정한다(intend), 생각한다(think, feel)”는 등의 말처럼 의식(意識)의 활동을 전제로 한 표현이다. 그런데도 #3은 비의도적인 오류에 대한 설명이고, #4는 의도적인 오류에 대한 설명이다. 카슨은의도적인 오류와 비의도적인 오류를 구분하지 못하면서 오류에 대해 논하고 있는 것이다.
메츠거 역시 위의 인용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의 책 제7장 제1절에서 「무의식적인 변화들」이라는 제목 하에 4개 구분을 했는데, 그중 네 번쩨 항목이 「판단의 오류들」로써 의도적인 변경에 해당하는 것을 단지 “판단의 오류”라는 말을 사용하여 비의도적인 변경이라고 잘못 분류했다.
카슨과 메츠거는 오류에 대해서 사실판단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가치판단으로 사실을 왜곡했다. 분명 필사자가 그의 판단으로 하나는 옳고 다른 하나는 틀리다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본문이 변개되어 오류가 발생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카슨이나 메츠거 같은 파괴적 비평가들은 자연주의적 입장에서 이러한 의도적인 변개를 단지 “정직한 판단”이나, “어떤 악의적인 의도나 본문을 변질시키려는 의도는 없다”거나, “선한 의도로 수행되었다”는 식으로 왜곡한 것이다. 즉 필사자들이 선한 의도든지, 악한 의도든지 간에 부지불식간의 실수로 본문을 변경시킨 것이 아니라 “본문을 바꾸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후에 바꾸었다는 사실 자체를 왜곡하여 의도적인 변경을 비의도적인 것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것은 결국 자신들의 자연주의적인 신학, 교리, 가치관 등에 맞지 않으면 악의(惡意)가 되고, 맞으면 선의(善意)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편견은 곧 악한 의도가 없이 선“의”(意, intention)로 본문을 변개시킨 것은 “의”도한 것(意圖, intention)이 아니라는 말도 안되는 왜곡된 판단을 하도록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왜 이러한 판단을 하겠는가? 이들 파괴적 비평가들은 물론 이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성경 변개를 심각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중요한 교리상의 변화와는 상관 없이 사소한 차이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어느 성경을 보든지 별 다른 차이가 없다는 식의 그릇된 생각을 갖고 있으며, 또 갖도록 유도한다. 이것이 바로 성경 변개자들의 속임수인데, 이러한 자의적인 판단으로 보존된 성경을 배격하는 것이다.

2. “문법을 수정한 경우”에 대하여

[카슨 #5] 또한 필사자들은 종종 문법이나 어휘 그리고 철자를 더 낫게 고치려고 애를 썼는데, 그것은 그들이, 신약성경을 기록하는 데 사용되는 구어체 헬라어(소위 코이네라고 불리움)보다 더 초기에 사용되었던 문학적인 아틱(Attic) 헬라어를 선호하였기 때문이다. 카슨, op. cit., p.29.


이러한 주장은 카슨이 얼마나 분별 없는 학자인가를 여실히 드러내는 증거이다. 하나님께서 신약성경을 기록하는 데 사용하신 헬라어는 B.C. 4세기부터 사용한 코이네(Koine) 헬라어이다. 그런데 아틱 헬라어란 이 코이네 헬라어 이전에 사용되던 고전 헬라어(Classical Greek)를 말한다. 이것은 고대 철학자들의 헬라어이며, 고대 자연인들(고전 2:14)의 문학작품에서 사용되었던 헬라어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섭리적으로 사용하신 신약성경의 언어인 코이네 헬라어의 문법, 어휘, 철자를 “더 낫게” 고치려 했던 필사자들이 적어도 4백년 전의 고전 헬라어를 선호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필사자들이 그리스 철학과 고대 세속적인 문학을 선호했던 초기 성경 변개자들과 그 추종자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게 아닌가? 정목사나 카슨이 말한 문법이나 어휘, 철자를 고친 필사자들은 알렉산드리아의 변개된 성경에서 사용한 아틱 헬라어를 선호하였다. 이렇게 아틱 헬라어로 기록된 대표적인 필사본, 즉 가장 변개된 필사본이 바로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이다.
<한글킹제임스성경>, 영어 <킹제임스성경>, 헬라어 <표준원문> 등 보존된 바른 성경들은 모두 최초의 신약성경이 기록된 언어인 코이네 헬라어로 기록되고 그 전통을 지닌 시리아-비잔틴 계열의 필사본들을 따르지만, 반면에 한글 개역성경, NIV 등 변개된 성경들은 아틱 헬라어로 기록되거나 그 영향을 받은 알렉산드리아, 서방, 카이사랴 계열의 필사본들을 따르고 추천한다. 카슨은 무엇이 자신의 주장을 지지해 주는지도 판단하지 못하는 비평가이다.
메츠거는 그의 책에서 문법의 수정에 의한 오류에 대해 언급하며 요한계시록 1:4,6,15; 2:20 등을 예로 들었는데, 네 구절 모두 헬라어 <표준원문>은 보존된 본문을 담고 있다. 반면 1:6을 제외한 세 구절에서 개역성경이나 NIV의 근거가 되는 네슬-알란드 헬라어 성경은 필사본 증거에 따르면 전혀 신뢰할 수 없는 변개된 본문을 담고 있다. 그런데도 메츠거는 이 세 개의 변개된 본문의 문법을 옹호하는데 헛된 노력을 기울였다.

3. “본문 융합”에 대하여 서로 다른 두 개의 이본을 합침으로써 발생하는 변개의 유형을 혼합(conflation)이라고 하는데, 정목사는 과거에 이것을 “상합”이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융합”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우리말로는 혼합이라는 말이 가장 적합하다.


카슨은 본문의 혼합(conflation)에 대해 바른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단지 사도행전 20:28 하나의 예를 들었는데, 조금 후대의 필사자들은 둘을 조합하여 독자들이 두 가지 본문을 모두 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오히려 오류를 저지른 것을 잘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메츠거 역시 바른 결론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마가복음 13:11을 예로 들며, “미리 염려하지 말라”는 본문과 “미리 행동하지 말라는”는 본문이 있는데 이 두 본문 가운데 바른 것을 제시하지 못하고 “마가복음을 필사했던 많은 훌륭한 필사자들은 이 두 동사 가운데 어느 하나를 택하기보다는 독자들에게 두 가지의 유익을 주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본문을 혼합하여 변개시킨 것을 정당화하고 이들을 훌륭한 필사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들 파괴적 비평가들은 성경에 대한 바른 믿음이 없음을 이전 글을 통해 살펴보았지만 이렇게 성경 본문을 변개시킨 것에 대해서 여러 본문을 볼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식의 태도를 가지고 있으니 다양하게 변개된 구절들이 나올 때마다 자신들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었다고 고마워해야 할 지경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이들 파괴적 비평가들과 이들의 선배인 웨스트코트와 홀트는 <한글킹제임스성경>과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근거가 된 시리아-비잔틴 필사본들이 후대에 혼합된 것이기에 형편없는 필사본들이라고 거짓 증거를 해 오고 있지만, 약 200여 년 동안 이 거짓말을 효과적으로 믿게 할 수 있을 만한 어떠한 증거도 온전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아-비잔틴 필사본들이 혼합되었다는 거짓말을 지금도 이들 파괴적 비평가들이 계속 유포시키고 있다. 그런데 메츠거가 그의 책에서(p.200) 혼합의 예로 제시한 세 개의 구절 모두 헬라어 <표준원문>을 비롯한 시리아-비잔틴 필사본들은 보존된 본문을 담고 있다. 반면에 이들 파괴적 비평가들이 최고라고 격찬하는 바티칸 사본은 “가장 초기의 최고 필사본”이라는 그릇된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소위 ‘후기 필사본들’에서나 발견된다는 혼합된 본문을 골로새서 1:12에 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있다. 따라서 메츠거의 책으로 공부한 사람들은 혼합된 본문을 지닌 것이 시리아-비잔틴 필사본이 아니라 오히려 알렉산드리아 필사본들이라는 판단을 내려야만 하지 않겠는가?

4. “교리적 수정”에 대하여

정목사는 교리가 수정된 경우는 “주로 보수적이고 정통적인 견해를 강조하기 위해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정목사가 메츠거의 책 중에서 오류에 관한 제2장 6절을 보았다면, 이러한 주장은 메츠거의 편견에 사로잡혀서 유추한 성급한 결론일 뿐이다.
메츠거는 6절의 첫 문장에 자신이 비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표현을 슬쩍 던져 놓고는 독자들을 편견에 사로잡히도록 하는 예들을 들었다. 메츠거는 첫문장을 이렇게 쓰고 있다. “교리적인 관심들 때문에 고의적으로 변경시킨 것들의 숫자를 어림잡기가 어렵다.” 이렇게 써 놓고서 메츠거는 15개 구절을 언급하며 교리적 이유로 본문이 변경된 아홉 개의 사례를 제시하는데, 소위 기독교의 신앙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본문을 변경시킨 듯한 예들만을 제시했다. 결국 교리적 변경에 대한 설명 중에서 이단들에 의한 변경이 있었다는 언급이 있기는 하지만 모든 사례를 한 쪽에 치우치게 제시함으로써 그의 편견을 드러냈으며, 정목사나 그 외의 사람들로 하여금 역시 동일한 편견을 갖도록 했다.
그러나 현대 성경에서도 발견되는 것처럼 초기에도 교리적인 이유로 성경을 변개 시키는 것은 믿음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 교리들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들이 비교가 안될 만큼 훨씬 더 많았다. 정목사의 주장은 성경 필사본들과 그 전승의 역사에서 드러난 변개에 관해서 전혀 무지한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말이다. 초기 성경 필사에서부터 지금까지 소위 교리적 오류, 즉 성경 변개는 이단들에 의한 비성경적인 교리를 양산하는 것이었다. 초기 필사본 전승의 역사에서 성경 변개는 바실리데스(134년), 에비온파(2-3세기), 발렌티우스(140년)와 그 추종자들, 말시온(150년), 오리겐(254년) 등 모두가 이단적인 교리로 성경을 변개한 사람들이며, 이들이 변개시킨 열매가 지금까지 계속된다. 물론 소위 정통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이단적인 변개에 대응하여 의도적인 변개를 유발한 사례들이 일부 있지만, 그것은 정목사의 주장처럼 “주로 만들어진 교리적 오류”의 예가 아니었으며, 폭넓게 행해지거나 확장되지도 않았다. John W. Burgon, The Causes of the Corruption of the Traditional Text of the Holy Gospels, (London, George Bell and Sons, 1896), pp.195 -201.

누구든지 카슨과 메츠거, 정목사 등이 오류에 대해 유포시킨 거짓 주장들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단지 이들을 답습하여 무지한 가운데 거짓말을 유포시키는 도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전체 156 / 8 페이지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