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성경 총론 분류

“사탄이 변개시켰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4년 09월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르면서 산다. 이 전쟁은 창세기 3장에서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계시록 20장에 이르러서야 끝날 것이다. 이 전쟁은 두 진영으로 나뉘어 싸우는 것인데, 하나님의 진영과 사탄의 진영이다. 하나님의 진영은 성령께서 주관하시고 사탄의 진영은 사탄이 주관한다....여기에는 중립지대도 없고 예외도 없다....영적 전쟁에서 사탄이 주로 파괴의 목표로 삼는 것은 성경의 원문이요, 또 그 나라의 언어로 된 성경이다. 성경은 성도의 믿음과 실행에 있어서 하나님의 권위이며, 그 권위는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권위이기 때문에 사탄은 이 권위를 혼란시키고 이 권위를 격하시키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 <한글 킹 제임스 성경> 서문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우리의 대적인 마귀(the Devil)라고 부르는 사탄 (Satan)에 대항하여 싸우는 영적 전쟁이다(엡6:12). 아담 이래로 인간은 사탄의 자녀가 되었고(롬5:12, 요8:44), 사탄의 영향 아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할 때, 영적 수술을 통해서(골2:11-15) 사탄과의 이런 관계가 끊어지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며(요1:12), 흑암의 권세로부터 그 분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다(골1:13). 이렇게 한 사람이 사탄의 진영에서 하나님의 진영으로 옮겨졌으나, 사탄은 자신의 진영에 있던 그 사람을 쉽게 포기하려 들지 않고 그 사람을 다시 차지하려고 필사적인 투쟁을 벌인다. 사탄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진 그 사람을 다시 “소유”할 수는 없다(롬8:33-39). 그러나 사탄은 그 사람을 교활한 술책과 속임수로 미혹하여(엡4:14) 그를 “점유”함으로써 자신의 진영에 속했던 옛 성품을 발휘하게 한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진 그가 영이 거듭나서 구원받았다 할지라도 그의 생각과 행동은 사탄의 관장 하에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사탄을 대적하라고 가르치고 있다(약4:7).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사탄의 실제적인 역사를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몇 가지 표현들을 제시할 수 있다 : “승리 하세요”, “그런 일은 ○○의 방해입니다”, “○○이 (그렇게 또 이렇게) 역사했으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문제가 해결 되었습니다” 등등의 표현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대적해서 승리해야 될 사탄의 구체적인 활동들에 대한 언급이다. 그러므로 분별력 있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사탄의 역사를 성경을 통해 올바로 판단하고 대처해야 하며,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공감하고 성경에 기록된 것을 그대로 믿는다면 사탄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떻게 역사하는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탄의 주된 공격목표가 무엇이고, 그 공격으로 인해 도출된 결과가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관장하고 있는가를 성경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대적하고 승리해야 할 사탄과 그의 활동을 고찰해 봄으로써 “사탄이 변개시켰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를 알아보자.

거짓말의 아비 사탄 - 그 안에는 진리가 없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사탄이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관장하는 존재”라고 인식하지 않고, 다만 사람들이 지닌 육신의 사악한 경향이나 인간의 위약함을 드러나게 하는 “미세한 영향력” 정도라고만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성경은 요한복음 8:44에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나서 너희 아비의 정욕을 행하고자 하는도다.』라고 기록하면서 사탄이 아버지가 될 수 있는 인격적인 존재임을 알려 주고 있다. 또한 욥기 1:6-12에서 사탄은 하나님께 욥이 악하다고 말로 고소하고 있는데, 만약 사탄이 단순하게 어떤 영향력이라면 말로 고소하는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마태복음 4:1-11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 예수님은 사탄을 인격을 지닌 자로, 실제적인 적으로, 교활한 자로, 원수로서 상대하셨다. 이와 같이 사탄은 생명과 지성과 의지력과 감정을 소유한 실제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사실은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 『누구든지 천국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할 때에는 악한 자가 와서 그 사람의 마음에 뿌려 놓은 것을 빼앗아 가나니』(마13:19). 또한 사탄은 “사람을 속이고 미혹하는 교활한 존재”이다. - 『뱀이 그의 간계로 이브를 속인 것같이』(고후11:3), 『그리하여 그 큰 용이 쫓겨나니 그는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옛 뱀, 곧 온 땅을 미혹하던 자라. 그가 땅으로 쫓겨나고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쫓겨 났더라』(계12:9).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하고 사람을 속이고 미혹하는 존재가 사탄인 것은 그가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이기 때문이며, 그 안에는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으며 진리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자기 안에 진리가 없음이라. 그가 거짓말을 할 때에는 자신에게서 우러나와 한 것이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또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라』(요8:44). 이와 같이 사탄은 진리를 거슬러 거짓과 오류를 발생하게 하는 근원이다.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은 진리이다. 그러므로 여러 성경 필사본들과 오늘날의 성경 번역본들에 나타난 것처럼 구절이나 단어를 ①삭제하거나 ②첨가하거나 ③다른 단어로 바꾸는 것(대체하는 것)은 분명히 진리의 말씀을 왜곡하는 것(이것이 “변개”이다)이며, 그 배후에 사탄이 역사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필사본들과 번역본들 간의 차이가 단지 인간의 실수라면 올바른 성경을 제외한 다른 번역본들이 하나같이 30,000여 군데를 거의 동일하게 삭제하고 첨가하고 바꾼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만일 이것을 단순한 인간의 실수나 견해차이라고 믿는다면 그렇게 큰 믿음을 가지고 왜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섭리로 온전히 보존하신다는 말씀은(시12:6-7) 믿지 못하는 것인가?
사탄은 자신의 실체를 가리고자 다양한 이름으로 나타나며(요14:30, 고후11:14, 계9:11; 12:9-10), 자신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바꾸기도 하고 다르게 이해하게 만들기도 한다(사14:12-17, 겔28:12-19). 또한 인격적이고 학식 있는 사람으로, 화합과 일치를 도모하는 모습으로, 사랑과 경건을 실행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그 실상은 거짓의 아비인 사탄의 역사이다. 『이것은 놀랄 일이 아니니 이는 사탄도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이라』(고후11:14).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 그의 원수가 와서 곡식 사이에 독보리를 뿌리고 가버리니』(마13:25). 이렇게 가장된 모습에 사람들이 속고, 또 독보리에 오염되는 것은 사람들이 구원받기 전에는 사탄에게 속했으며 그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했기 때문이다. 『너희가 한때는 그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의 통치자, 곧 지금은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행하였으니』(엡2:2). 『그들 가운데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광채가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느니라』(고후4:4). 이와 같이 사탄은 사람들을 속이기에 충분할 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능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오류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
사탄의 역사는 그에게 속한 악한 영들로 구성된 조직들을 통해 이루어지며(엡6:12), 조직을 갖춘 다수의 마귀들을 통해 운영된다(단7:19,20, 계12:4,7). 즉 사탄의 왕국은 무질서하게 뒤섞인 오합지졸이 아니라(마12: 26), 정교하게 조직화되고 제도화된 악한 영들의 활동으로 설명될 수 있다. 사탄은 교만과 야망, 자기 이익과 세력, 탐욕과 쾌락의 정권으로 인간을 다스리며, 거짓 사랑과 경건과 화합의 수호자로 역사한다(요14:30; 18:36, 엡2:2; 6:12, 요일2:15-17).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사탄의 역사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예외 없이 활동력 있게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고전5:1-5, 눅22:31) 성경은 그에 대해 대비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 이는 너희의 원수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기 때문이니라. 믿음 안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의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5:8-9).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4:27).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사탄의 역사를 인지하지 못하고 사탄을 대적하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 된다. 사탄은 하나님의 모든 참된 자녀들을 공격하며, 필자와 독자들 또한 예외는 아니다. “대적 한다”(resist)는 말은 저항하는 것, 굳건히 대항하는 것, 필요하면 대적하여 싸우는 것을 의미한다. “정신을 차리고”(Be sober)라는 말은 정신이 건전한 것을 말하며, 정신적으로 자제하며 경계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깨어있으라”(Be vigilant)는 말은 잠에서 깨어있는 상태, 즉 근무하는 파수꾼처럼 적의 접근을 항상 보고 듣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깨어 있고 틈을 주지 않으면서 대적해야 할 만큼 사탄은 실제적으로 역사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나는 하나님을 믿으며 사탄은 무시 한다”고 말하면서 소극적인 싸움을 싸우려고 하기 때문에 패배한다. 하나님은 굳세게 일어서서 성령의 칼, 곧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뽑아 대적하고 저항하여 승리하라고 말씀하신다. 믿음의 영웅만이, 신학자나 목사만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싸워야 한다. 그런데 사탄은 그리스도인의 무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거짓말과 미혹과 잘못된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지적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온전한 성경을 “삭제”와 “첨가”와 “대체”를 통해 변개시켰다(신4:2, 잠30:6, 렘5:30-31; 23:21,30, 마13:25, 고후2:17, 계22:18-19). 유명하고 경건하다고 하는 학자들을 통해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성경을 훼손 시켰던 것이다(창3:1-5).
사탄의 역사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때도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주님의 진리는 명백하고 구체적이지만 사탄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타협안을 가지고 찾아온다. 커다란 불확실성을 조작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연막을 치고 안개로 덮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음성은 명확한 반면 사탄의 음성은 “우유부단”하고 “혼미”하다. (이것을 “객관적”이고 “포용력” 있는 것으로 잘못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바로 그 차이에 유의해야만 한다. 또한 우리는 비평을 받아들일 때에도 깨어 있어야 하는데, 이는 사탄은 비평이 가해질 때도 역사하기 때문이다. 사탄은 잘못 아는 사람이 잘못 비평하게도 하며, 상대방이 올바른 것을 지적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거부하게도 한다.
이상에서 확인한 것처럼 사탄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역사하여 그의 목적을 달성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사탄이 자신의 목적을 수행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모든 문제의 기준이 되는 성경에 대한 생각을 잘못 갖게 하는 것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사탄이 그들의 마음을 주장하고 있을 때에는

이제 성령께서 제시하시는 위와 같은 성경적 진리를 거부한 상태에서 가르치고, 설교하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제시하는 대로 사탄이 창세기 3장 이래로 거의 모든 인간사에 깊은 관심을 보여 왔으며, 지금도 살아서 활동하고 있고, 앞으로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강력한 능력과 권위를 행사할 것임(계13장)을 인정한다.
그러나 거의 모든 교회사가들과 신학자들과 목사들과 소위 ‘평신도’들은 실로 “어린 아이”와 같다(엡4:14, 고전13:11). 이들을 “어린아이”로 부르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글이나 설교나 사상에 교회사의 많은 사건들 및 성경에 단어나 구절을 첨가하고 삭제하고 바꾸는 일이 사탄의 직접적인 역사였다는 진실을 애써 감추려고 하거나 무시해 버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윌 듀란트(Will Durant)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세속 역사나 교회사에 있어서도 사탄의 역사는 찾아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탄이 교회의 역사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든가, 사탄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는 모두 성경의 진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또한 역사의 교훈들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전혀 비실제적인 것이다. 전 세계를 미혹하는 존재가 있다면(계12:9), 그가 교회사가와 신학자들과 목사들을 속이는 것쯤은 지구상의 그 어떤 ‘죄인’을 속이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속 역사에서 전개된 사건이건 교회사에서 전개된 사건이건 간에 집요하고 교묘하게 그리고 강력하고 활발하게 진리를 왜곡시키려고 시도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창세기 3장)을 무시한 역사적 기록이나, 가르침이나, 생각은 진리를 찾고자 하는 그 누구에게도 그 진리를 알 수 없게 만든다.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요14:6) 그 분과 사귐을 갖는 사람이며, 진리를 자처하는(요17:17) 책인 성경을 부여받은 사람이다. 믿는 자 안에 있는 “진리의 영”(요14:17)이 그를 모든 진리로 이끈다면(요16:13), 범세계적으로 6천 년 간에 걸쳐 기회가 주어지면 그 어느 때든지(딤후2:26) 진리를 왜곡시키기 위해(살후2:4-10) 온갖 능력과 권위를(눅4:6)를 행사하는 진리의 초자연적인 대적자를 무시한 채 기록된 역사나 가르침을 어떻게 올바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 악한 자가 어디에서 활동하며, 어떻게 활동했으며, 언제 혹은 누구를 통해 역사했던가를 올바로 알지 못하며, 입술로만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행세를 하는 사람들의 가르침과 그러한 생각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강단에서 가르치고 설교하면서 사탄에 대한 성경적 사실들을 내던질 수 있겠는가? 올바른 그리스도인이면 성경이 기록한 대로 사탄의 역사에 관한 확실한 사실들을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탄의 세상(고후 4:4)이나 그의 “그리스도들”(고후 11:1-14)을 논할 때, 사람들이 사탄에게 합당한 “비중”을 두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사탄과 그의 간계를 모르거나(엡6:11) - 그런데 모르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고의적인 죄가 될 수 있다(고후2:11) - 아니면 비겁하게 마귀의 생각에 동조하여 성경적 이슈가 등장하는 곳에서는 “그 누구 편도 들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배를 섬기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 확고한 성경적 이슈들을 담고 있지 않은 ‘설교’나 ‘가르침’이나 ‘생각’은 전혀 무의미한 것이다. 성경적이든, 역사적이든 어떠한 “사실”들을 다루는 데 있어 “객관성”을 냉정하고 중립적으로 지겨야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모든 사탄적인 사건들조차도 그저 ‘인간의 무지’나 ‘실수’ 때문에 발생했다고 취급해 버린다. 오늘날 성경의 최종권위에 대해 이야기 하고 가르칠 때, 즉 어떤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THE BIBLE)으로서 “진리”이며 어떤 것이 삭제되고 첨가된 “유사품”(성서-bible)으로서 “오류”인가를 다루게 될 때,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는 “진리”이고(하나님께서 기록하고 보존하신 성경이고) 다른 하나는 “오류”라는(하나님께서 기록하신 것을 사탄의 역사로 단어들이 삭제되고 첨가되고 대체된 것이라는) 명백한 성경적 사실을 배격하고 단지 이 사람이 “선호”하는 것은 이 성경이고 저 사람이 “선호”하는 것은 저 성경이라고 말함으로써 두 가지 명백한 구분을 혼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단지 지금까지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올바른 것, 즉 변개되지 않은 성경을 배격하고 잘못된 것, 즉 변개된 성경을 고수하겠다는 것은 진리에 반대되는 것이며, 이는 곧 사탄의 영향 아래 있는 것이다. 진리의 말씀을 오류로 바꾸어 놓은 것을 사탄이 제데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또 한 번 역사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사실을 분별하지 못하고서 단어들이 삭제되고 첨가되고 대체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유명한 학자들과 교계의 지도자들의 글이나 발언을 검토해 보면 그들은 사탄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어쩌면 사탄이 그들의 명성이나 책의 출판이나 판매를 관장하고 도울 것이기 때문에 사탄을 대적하지 않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게 한다. 그들은 성경에 관해 논할 때마다 올바른 성경을 삭제하고 첨가하고 바꾸는 것이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러한 차이는 사탄이 관여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기 때문이다. 이들 전형적인 신학자들과 목사들과 이들에게 영향을 받은 ‘마음이 부요한 평신도들’은 알렉산드리아 이단들처럼 너무도 그럴싸하게 한 마음을 이루어 사탄의 역사에 대해 “영적 소경 군단”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가 무지의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이다.
그 어떤 사람도 그가 다루는 주제에 접근함에 있어 완전한 중립일 수는 없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는 그 누구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일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현대 과학자들과 신학자들과 목사들과 ‘교인’ 또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마치 하나님처럼 초자연적 “냉정”과 “객관성”을 획득한 사람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에만 집착하지 말고 이 성경과 저 성경을 함께 참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어떤 죄인이(구
원 받았든 구원받지 않았든 간에) 완전히 중립적 일 수 없는 한 분야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성경적 진리와 마주치게 되는 그 분야이다. 고집 센 불신자나, 불가지론자나, 배교나, 무신론자나 그 외의 누구라도 완전히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 그 누구도 “편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음에도(행22:2) 자신은 편견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자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학문이 너무도 깊고 넓어서 (그들의 학문이 그들의 양심을 마비시켜 드디어는 “그 어떤 것”에도 “관용”을 베풀 수 있게 된 “놀라운” 사람들은)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수입에 지장이 없다면, 자신이 인격적이고 경건한 사람으로 인정되는데 지장이 없다면 “그 무엇이든” ‘용납’하고 ‘중용’을 지키겠다는 사람들로서 거짓말조차도 용납할 것이다. 그들은 사탄의 역사를 무시해 버리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과 태도를 취한다. 사탄이 그들의 마음을 주장하고 있을 때에는 언제라도 그러하다.

스스로 어리석게 되기를 고집할 필요가 있는가?

사탄의 역사는 인류 역사를 총망라하고 있는데도(창세기 3장, 에스겔 28장, 이사야 14장, 욥기 1장, 마태복음 2장, 계시록 13장 등) 사탄은 마태복음 27장에서 죽었고, 그 이후에는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처럼 스스로 어리석게 되기를 고집할 필요가 있는가? 만약 하나님께서 한 권의 책을 갖고 계시다면 사탄도 한 권의 책을(고후11:4) 갖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사역자들을 갖고 계시면 사탄도 사역자들을 데리고 있으며(고후11:15), 하나님께 그리스도가 있으면(Christ) 마귀도 자기의 그리스도(christ)를 갖게 될 것이고(마24:5, 눅21:8),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도성인(계21:9-10) 교회를 신부로 갖고 있다면 사탄도 이에 지지 않고 교회요 도성인(계17:18) 자신의 신부를(계17:1-5) 갖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사탄이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한 성경의 모조품을 만들어 그리스도인의 무기인 “양날 있는 날선 칼”을 “날도 서지 않은 조그만 버터 나이프”로 바꾸어 버린 것을 인격적이고 포용력 넓은 마음으로 수용하겠는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오류를 관용적 태도로 용납하거나 거짓을 친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표식인 것처럼 생각하는 자유주의자들과는 타협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신실한 증인이어야 하지(고전 4:1-2)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정치인’이어서는 안 된다(딤전 5:7,17 ,21). 이 세상 제도에 일치하는 것이야말로(딤후4:10)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롬 12:1-3) 치명적인 결점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이 제시하는 진리보다도 ‘인격적’이고 ‘경건한’ 누군가를 이야기하거나 그들의 학벌을 이야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자서전에서(고린도후서 11장) 자신에 대해 “나팔”을 불어대지 않는다. 또한 바울은 곧이어 12장에서 사탄의 역사를 언급하고 있다. 바울은 사탄이 역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자신의 삶에 있어서도 사탄이 간섭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 성경에 대한 온전한 믿음을 지니지도 않은 신학자들에게는 사탄의 역사가 없으며, 단지 견해 차이로서만 번역본의 변개를 설명하겠는가?
우리는 “선하고, 경건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하고(마태복음 16:22의 베드로를 보시오), 최종권위를 무너뜨리려고(왕상13장) 애쓰고 있는 것을 늘 볼 수 있다. 상당히 많은 수의 “선하고” 준비되고, 뜻있는 사람들이 사탄에게 여러 가지 목적으로 쓰임 받아 왔다. 사탄이 어떤 거짓말이든지 퍼뜨리려고 마음만 먹으면 이들은 최상의 “운반자”들이 되고 만다. 예를 들면 이그나티우스나 폴리캅에 의해 전달된 거짓말은 말시온이나 셀수스 같은 이단들이 퍼뜨린 거짓말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키거나 왜곡시키는 선하고 “경건한” 사람들은 대단한 광고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더 많은 구매자들이 몰리기 마련이다.
술주정뱅이나 비도덕적인 불가지론자(혹은 자유주의자나 신정통주의 신학자들) 같은 사람들은 “효과적으로” 거짓과 오류를 퍼뜨 수 없다. 적어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대해 그들은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러나 성경 변개를 가장 잘 퍼뜨리는 사람들은 늘 “진영 안”에 있기 마련이다(수9:1-15). 사람들이 가치를 두고 있는 선함과 경건함(노아와 다윗)은 창세기 1:1부터 계시록 20:9의 마지막 전쟁이 있기까지 결코 사탄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절대 보호막이 될 수 없다. 적어도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관련하여 가하는 공격에 있어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의 “선함”과 “경건함”이 신성한 권위를 지닌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 넣으신 말씀보다 더 권위 있는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믿음을 떠난 배교이다. 그런 사람이야 말로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아니라 감상적인 “휴머니스트”에 불과할 뿐이다. 현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 역시 최종권위에 관한 한 자유주의적 휴머니스트일 뿐이다. 그들은 그들의 친구들이, 그들의 목사님들이, 그들의 교수들이, 그들의 동료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성경에 없는 것을 거짓 되이 예언하고 삭제하고 첨가하고 바꾸는 것(렘5:30-31;23:21,30, 계22:18,19, 고후2:17)이 자행되고 있다는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씀(막13:31, 마24:34-35, 눅21:33)]과 다르게 이야기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그들의 말을 올바른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 주위에서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지 않은가? 혹시 여러분이 그런 사람은 아닌가?
만약 여러 사람들이 고백하는 것처럼 그렇게 “객관적”인 자세를 취하고자 한다면 그는 “선하고” “경건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위, 곧 성경의 권위를 무너뜨리기 위해 사탄을 대신하여 말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성령님께서 독자 여러분을 모든 진리로 이끄시기를(요16:13) 바라는 것은 “인간이 역사로부터 배우는 유일한 것은 인간이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라는 역사의 교훈 이상의 것을 여러분이 꼭 배우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독자 여러분은 되풀이 되는 역사의 우를 또 다시 범치 않기를 바란다. 참된 교회사는 이 세상이 알고 있는 가운데 종교의 자유를 가장 철저히 거부하는 집단이면서도 감쪽같이 그렇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었던 “로마 카톨릭”과 사탄의 지배 하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의 거짓과 오류를 지적하고 대항했던 모든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역사이며, 그들에게 주는 사전 경고이고 그 대비책이다. 아직도 사탄이 성경에 대해서, 또 필자와 여러분 주위에서 얼마나 치밀하고 간교하게 역사하는가를 알지 못한다면 “인간이 역사로부터 배우는 유일한 것은 인간이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라는 말을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BB

전체 156 / 7 페이지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