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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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변개의 근원지 - 알렉산드리아의 이상한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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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3년 01월호>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성경 변개의 ‘공헌자들’을 일축해서 “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Alexandrian Cults)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들을 고찰해 봄으로써 어떤 성경이 변개된 것이며, 그 사본들은 어떤 계열의 사본들인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변개의 주역들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성경을 변개시켰는지 자세히 알 수 있다.
이러한 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과 그들이 행한 성경 변개의 실상을 알고자 한다면 그들의 학문적 근원지였던 북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의 한 학교를 살펴 보아야 한다.
알렉산드리아는 “함의 땅”에 있는 도시이다(시105:27, 106:22). 하나님께서는 그 땅에 요셉의 유골이 남아 있는 것을 원치 않으셨으며(출13:19), 야곱은 자신이 그곳에 묻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창49:29), 유대인들은 그 땅에 가지 말라고 경고했다(렘42:14). 하나님께서는 그 땅에서 말들을 가져오는 것조차도 견딜 수 없는 것으로 여기셨으며(신17:16), 이스라엘을 한 나라로 함의 땅에서 불러내셨을 뿐만 아니라(출15) 하나님의 아들 역시 그 땅에서 불러내셨다(마2:15) 이와 같이 성경의 모든 곳에서 알렉산드리아가 있는 북아프리카의 이집트는 함의 땅으로서 세상을 나타내며, 부정적으로 표현된다(창12:12; 37:36, 출1:11; 20:2, 신4:20, 렘46:25, 계11:8, 왕상3:1; 11:5,8).
이러한 ‘알렉산드리아’에 가장 이상한 한 학교가 있었는데, 역사가들은 이 학교를 기독교계(Christendom)의 최초의 신학교라고 말하며, 일반적으로 “교리문답 학교”(Catechistical School)라고 일컬어진다. 이 학교는 종교철학의 연구를 위해 설립된 초기 영지주의자들의 학교를 모델로 세워졌으며, 3년 과정으로 학비는 무료였다. 그러나 강의는 부유한 학생들의 기부를 통해 지원받는 형태였다. 개종한 스콜라 철학자였던 판태누스(Pantaenus)는 이 학교의 학자이었으며(A.D.180), 클레멘트(Clement, 202)와 오리겐(Origen, 232)이 그의 뒤를 이었고, 오리겐에 와서 이 학교는 절정을 이루었다. 이 학교는 성경으로 믿음을 굳건히 한 것이 아니라 단지 기독교를 철학적으로 옹호했을 뿐이다. 이 학교의 저술가로는 쥴리어스 아프카누스(Julius Africanus, 215), 디오니시우스(Dionysius, 265), 그레고리(Gregory, 270), 유세비우스(Eusebius, 315),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373), 디디무스(Didymus, 347) 등이 있었으나 오리겐이 그 중 거두였으며, 그의 성경해석법은 자신 이후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성경 해석상 많은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리우스(Arius)는 이 학교의 교리문답 교사였으며, 필립 샤프(Philip Schaff)가 “니케아 시대의 신학의 중심”이며, “정통주의의 아버지”라고 평가하는 아타나시우스(실상은 그렇지 않지만) 이 교리문답 학교와 공식적인 연관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 양육받고 훈련받은 것같이 이 학교의 영향을 대단하게 받았던 사람이다. 이 학교는 이집트의 신학적 혼란 때문에 4세기 말에 문을 닫게 되지만, 제롬(Jerome)과 암브로스(Ambrose) 같은 서방 교사들과 동방의 사고체계를 완전히 지배하며 카이사랴와 그밖의 중심 지역에서 그 영향력은 계속되었다. 이 학교는 신화적인 경향을 나타냈는데, 입학 자격이 부여된 신입생들에게 지속적으로 행해진 비밀교리의 학습을 포함해서 성경의 영감과 해석방법에 대한 이 학교의 견해는 신플라톤주의로부터 유래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비성경적인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이 동서를 막론하고 전 기독교 체계 안에서 일상적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성경의 변개를 대다수가 알지 못하며, 그로 인해 말씀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 기독교계에 팽배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사탄의 철학체계(골2:8)는 후에 교부들에게 큰 어려움을 주었는데(A.D.100-300) 이를 영지주의라고 불렀다. “영지주의자”(Gnostic)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ignostic”과는 구별되며, “아는 자”라는 말이다. 이는 하와가 가진 최초의 문제가 알고자 하는 것이었다는 사실과 대비된다(창3:1-3).

영지주의자들은 플라톤과 필로의 개념들을 확장하여 그리스도와 예수님이 두 개의 분리된존재라고 파악했다. 샤프에 따르면 “영지주의”란 역사에 알려진 “종교의 이론적인 혼합주의” 가운데 가장 거대하고 포괄적인 형태이다. 이 영지주의는 동방의 신비주의와 그리스 철학, 알렉산드리아적이며 필로적인 유대주의, 그리고 기독교와의 혼합이다. 즉, 신비주의, 불신앙(눅2:33), 현대주의(눅23:42), 행위를 통한 구원(갈5:4), 은혜를 통한 구원(엡2:8), 요한복음 3:16, 카톨릭적인 기독교(골1:14) 등과 같이 서로 합치될 수 없는 것들에 금욕주의(골2:23)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괴물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오늘날 변개된 성경 본문과 난외주와 주석을 영지주의처럼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일관한 채 단지 ‘아름다운 모양’으로만 단장하여 서점의 진열대에서 사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살펴 보고자 하는 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은 그들의 근거지가 비성경적인 혼합주의의 온상이었으며, 그 가운데서 영지주의적 그리스 철학에 의해 기초를 놓았고, 그 철학에 의해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모양만 좋고 속은 썩어 있는 열매를 맺었던 것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알렉산드리아를 대표하는 성경 변개의 ‘올스타팀’을 연대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플라톤(Plato, B.C.427-347), 필로(Philo, B.C.20-A.D.50), 판태누스(Panteanus, A.D.145-200), 클레멘트(Clement, A.D.150-215), 오리겐(Origen, A.D.184-254). 이들은 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을 형성하는데 기초를 세운 사람들로서 모두가 ‘교육가’였고, ‘가르치는 교사’였으며, ‘과학적’이고 ‘철학적’이었다. 비록 이들에게는 이러한 말과 함께 듣기 좋은 수식어가 따라 다니지만 이들이 성경 변개의 주역들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리이다.
초기 변개의 극치를 장식한 오리겐은 그 앞에 있었던 올스타팀의 선배들을 따라 그의 체계를 형성하였다. 이제 오리겐과 그들이 함께 있었던 알렉산드리아와 그 곳의 한 이상한 학교를 대표하는 사람들을 통해 알렉산들아의 이단들을 구체적으로 살펴 보자.
플라톤은 구원받지 않은 그리스 철학자로서(골2:8) 지혜가 최고선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고전1-3장). 그는 윤회설을 신봉했고, 혼과 몸의 환생을 믿었으며, 다신론주의자였고, 천국과 지옥, 심판, 부활 등을 믿지 않았으며, 사람들로부터 육지의 동물들이 진화했다고 믿었고, 하나님이 중성의 정신적인 힘이라고 믿었으며, 하나님을 단지 최고의 형상이나 이데아로 알았던 사람이다. 플라톤과 고대의 플라톤주의는 일반적으로 강력한 종교적 양상을 가졌던 피타고라스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고대 말기의 플라톤주의는 (특히 신플라톤주의는) 하나의 제의(祭衣)로 발전되었다. 아테네에 있던 플라톤의 아카데미는 529년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에 의해서 폐쇄되기까지 이교신앙의 요새로서 역할을 하였다. 이미 헬레니즘화된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은 플라톤과 그리스 철학의 영향 아래 들어갔으며, 이때부터 소위 ‘기독교 신학’ 안에 플라톤주의의 영향은 계속되었다. 초기 플라톤의 영향은 필로 이전에서부터 비유적인(allegorical) 성경 해석이 가장 강했다. 필로는 플라톤의 이론들과 헤라클레이토스와 스토아주의의 로고스에 대한 이론을 가지고 구약의 가르침과 혼합하려고 한 그의 철학체계를 구축했다.
또한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은 그리스 문학과 철학에 깊이 심취했는데, 그들의 비유적인 성경 해석은 모세가 플라톤과 그 밖의 다른 그리스 철학자들의 철학을 말한 것으로까지 해석하게 하였다. 이러한 플라톤의 사상과 영향이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와 판태누스, 칼레멘트, 오리겐에게 이어졌다. 특히 오리겐은 수 년 동안 신플라톤주의 창시자인 암모니우스 사커스(Ammonius Saccas, A.D.170-243) 아래서 수학하기도 했고, 플라톤의 전통으로부터 교리들을 빌어 왔으며, 그 결과 그 가운데 삼위일체에 대한 그의 부정은 신플라톤주의 근본 이론들과 유사한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고 격하시킬 목적으로 성경을 변개시킨 것은(마1:25, 눅2:33, 행8:37, 딤전3:16, 요일5:7-8...) 오리겐이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의 모체임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플라톤은 그의 사상과 그 영향력으로 인하여 초기 성경 변개의 근원지인 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이 설립한 교리문답 학교에서 등대와 같은 지도적 위치를 차지했으며, 오늘날의 대다수 신학교에서도 동일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계속해서 북아프리카의 함의 땅에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이상한 학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성경 변개의 올스타팀 가운데 필로와 판태누스, 클레멘트, 오리겐을 찾아가 보자.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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