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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라 알란드의 변화와 속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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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0년 10월호>

<킹제임스성경>의 비잔틴 필사본들에 대한 변화된 평가
- 비잔틴 필사본들이 후대에 혼합된 본문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된 “루시안 개정본”에 대한 이론을 부정하고 비잔틴 필사본들을 중요한 증거로 수용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바바라 알란드(Barbara Aland)는 그녀의 남편 커트 알란드(Kurt Aland)와 함께 저술한 에서 비잔틴 원문이 저급하다고 평가했는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평화의 시기는 신약원문의 발전에 중대한 기간이었다. 안티옥에서 초기 형태의 본문 문체가 다듬어졌고 교회적으로 편집되었으며 신앙에 맞게 본문의 내용이 확대되었다. 이것이 코이네 원문(Koine text)이라고 부르는 것의 기원이었고, 후에 비잔틴 제국 원문이 되었다. 4세기의 전통은 이것을 루시안의 원문이라고 불렀다... 4세기에 루시안의 원문은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Kurt Aland and Barbara Aland, The Text of the New Testament, trans. by Erroll F. Rhodes, (Grand Rapids, Mich.: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 1989), pp.64-65.


이와 같은 주장은 알란드뿐만 아니라 분별력 없는 대부분의 현대 원문비평가들이 동일하게 가르치는 바이다. <킹제임스성경>의 저본인 헬라어 <표준원문>의 필사본들, 즉 비잔틴 필사본들을 평가절하했던 근거가 4세기에 시리아 안티옥에서 루시안이 교회적으로, 즉 공식적으로 본문을 변경시켰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때 문장이 다듬어지고 부가적인 설명이 첨가되어 비잔틴 원문은 다른 원문 유형에 비해 길고 쉽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현대 비평가들이 선호하는 시내사본, 바티칸 사본을 비롯한 알렉산드리아 원문 계열의 필사본들은 본문이 짧고, 어렵다. 자신들의 필사본에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만든 원칙이 짧고, 어려운 본문이 원래의 성경 본문이라는 원칙이다.
또한 루시안에 의해 만들어진 개정본이 다량으로 필사되고 널리 유포되어 다수의 비잔틴 필사본이기 양산되었기 때문에 비잔틴 필사본들은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이 1881년 이후의 비성경적인 비평가들이 가르친 이론이었다. 이 주장은 사실상 1881년에 웨스트코트와 홀트가 그들의 변개된 헬라어 성경을 만들면서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의 열세를 극복하기 제시한 것으로, 그들의 계보이론에 근거해서 비잔틴 필사본은 서방원문과 알렉산드리아 원문 및 중립원문을 “혼합”하여 만든 것이라는 주장에서 기원한 것이며, 알란드 역시 이 주장을 수용하고 가르쳤다. 실제로 국내 신학자들 전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다수의 분별력 없는 신학대학 교수들이 비잔틴 필사본은 루시안 개정본에 의한 것이기에 열등한 것이라는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런데 바바라 알란드는 지난 8월 말에 대한성서공회와 한신대, 감신대 등에서 행한 강의에서 자신을 포함한 동류의 비평가들이 가르치는 위와 같은 주장을 부정했다. 그녀의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며 또 속임수가 숨어 있겠는가? 알란드의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비잔틴 원문은 어떤 체계적인 수정 작업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단지 비잔틴 사본들의 고도의 보존밀도와 또한 필사자의 조심성 때문에, 비잔틴 원문이 하나의 다듬어진 형태로서의 본문유형을 이루고 있다는 인상을 일으킵니다.” Barbara Aland, Die Editio Critica Maior des Neuen Testaments : Ihre Anlage, jhre Aufgabe, die neu entwicklten Methoden der Textkritik, (Koeran Bible Socity Scholarly Forum, 2000. 8. 29), p.17.

“코이네 혹은 비잔틴 원문을 예로 들어봅시다 : 100년이 넘도록 우리는 코이네 원문을 아주 나쁜 원문유형이라고 - 학자들이 생각했기에 - 배웠습니다. 그 이유는 3세기 말에 안디옥의 루시안이 준비한 개정본에 그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루시안은 보다 앞에 있던 초기 본문의 유형들에서 나온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혼합했는데, 주로 거슬리거나 어색한 구절들을 다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 사실일까요? 분명히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코이네 원문을 개정본으로 간주한다면, 그것이 조직적으로 편집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코이네 원문으로 증거된 전형적으로 다듬어진 이본들을 발견하지만 비전형적인 본문들도 발견합니다. Barbara Aland, New Testament Textual Research, its Methord and its Goals, (제7회 감신대 성서학 연구소 공개신학강좌, 본문비평과 성서학, 2000년 8월 31일), p.11.


바바라 알란드는 루시안에 의해 다듬어지고 편집된 본문이 루시안의 원문이며, 이것이 비잔틴 필사본이라고 직접 주장하고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강의에서는 “100년이 넘도록 우리는 코이네 본문을 아주 나쁜 본문유형이라고 - 학자들이 생각하기에 - 배웠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은 그렇게 가르치거나 생각하지 않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나서는 자신의 새로운 비평판인 대비평본(Editio Critica Maior)을 편집하면서 현존하는 전체 필사본들의 90%를 수집하고 분석해 본 결과 비잔틴 본문이 이전의 주장들과는 다르게 조직적으로 변경되고 혼합된 필사본이 아니라 채택해야 할 훌륭한 본문이 있다고 함으로써 소위 자신의 학문적 연구결과로 설명했던 것이다.
그러나 알란드가 루시안 개정본에 대해 입장을 바꾸기 오래 전부터, <칠십인역>이 B.C. 3세기에 존재했다는 역사성이 전혀 입증되지 않은 것처럼, “루시안 개정본”이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은 학자들의 가정에 불과하다는 바른 주장이 헬라어 <표준원문>을 바르게 수용한 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제시되어 왔고, 이외의 여러 학자들 역시 루시안 개정본에 대한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이론을 부정해 왔다. Wilbur N. Pickering, The Identity of the New Testament Text, (Nashville, Thomas Nelson Publishers, 1980, Revised edition), pp.37-38,93-95,119.

그런데 문제는 바바라 알란드의 이러한 변화된 주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 채 대한성서공회와 여러 신학대학의 교수들과 학생들은 “미혹하는 한 여인”이 제시하는 방대한 양의 비평장치에 속아 넘어간 나머지 그녀를 단지 세계적인 석학으로만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변화된 주장은 비잔틴 필사본들이 열등하다는 지금까지의 이론을 오류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도 요지부동한 국내의 신학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알고 무엇을 확신하고 있는 것인가? 한편으로 바바라 알란드가 비잔틴 필사본들을 높게 평가했다면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이며, 그녀가 무엇을 속이고 있다는 것인가?

비잔틴 필사본들이 교회적으로 행해진 공식적인 개정본이 아니기 때문에, 즉 알렉산드리아나 서방, 그리고 중립원문의 필사본들을 혼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잔틴 필사본들에 대한 평가를 “비잔틴 원문은 어떤 체계적인 수정 작업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단지 비잔틴 사본들의 고도의 보존밀도와 또한 필사자의 조심성 때문에, 비잔틴 원문이 하나의 다듬어진 형태로서의 본문유형을 이루고 있다는 인상을 일으킵니다.”는 알란드의 고백은 당연하다. 그러나 알란드는 전적으로 비잔틴 원문을 수용하거나 그것을 우위에 놓지 못했고 또 할 수도 없다. 그렇게 한다면 자신이 편집한 네슬-알란드 성경들(NTG)이나 성서공회연합회의 성경들(GNT)을 모두 부정해야 하고 새롭게 편집하는 대비평본(ECM)을 포기해야 하며, 단지 헬라어 <표준원문>을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녀의 속임수가 발휘되어야 했다. 방대한 양의 필사본들을 분석해 본 결과 비잔틴 필사본들의 권위(authority)와 진정성(authenticity)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지만 자신의 학문적 연구업적 안에 가두어 놓음으로써 진리는 가려지고 자신의 거짓된 권위를 드러나게 한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대비평본(ECM)을 편집하고 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차별화된 증거 자료들과 논리를 위해서는 비잔틴 필사본들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자료 제시는 필요하지만, 역시 웨스트코트와 홀트를 따르는 성경 변개자로서의 기질이 그대로 발휘되어 인간의 학문적 권위를 내세워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나 진실은 가려버리는 것을 말한다. 여전히 변개된 알렉산드리아 원문 계열의 필사본들(바티칸 사본, 시내사본 등)의 권위를 내세워야 하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이 나타나면 비잔틴 필사본들의 우수함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거나 비잔틴 필사본들이 모든 부분은 아니지만 의도적으로 다듬어지고 변경된 것들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이율배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알란드의 변화된 평가와 속임수를 그의 강의 내용에서 확인해 보기 바란다.
“웨스트코트와 홀트 이래로 우리가 지금까지 늘 배웠던 것은, 비잔틴 본문은 신약성서의 가장 나쁜 본문형태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러합니까? 여기서 우리는 정확하게 구분해야 하며 또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Barbara Aland, Die Editio Critica Maior des Neuen Testaments : Ihre Anlage, jhre Aufgabe, die neu entwicklten Methoden der Textkritik, (Koeran Bible Socity Scholarly Forum, 2000. 8. 29), p.17.

“비잔틴 본문은 어떤 독법을 위한 결정을 내리는데 증거물로서 역할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있습니다. 한 좋은 예가 바로 앞에서 말씀드린 베드로전서 4장 16절에 나오는 merei/onomati라는 이독법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비잔틴 본문을 어떤 독법을 위한 증거물로 삼고 중히 여길 것을 배우게 됩니다.” Barbara Aland, Die Editio Critica Maior des Neuen Testaments : Ihre Anlage, jhre Aufgabe, die neu entwicklten Methoden der Textkritik, (Koeran Bible Socity Scholarly Forum, 2000. 8. 29), p.19.
[알란드는 베드로전서 4:16에서 비잔틴 필사본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에 강의의 1/3을 할애했다.]
[비잔틴 필사본들이라고 밝히지 않고서 비잔틴 필사본들에 대한 높은 평가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근원에 가까운 일련의 사본들이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 사본들에는 부분적으로 전승의 출발점 본문으로 나아가는 직접적인 통로가 있습니다. 이들 사본들은 본문의 가치에 있어서 바티칸 사본(B)과 시내 사본(א)의 가치보다 그다지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베드로전서의 경우에는 이들은 심지어 시내 사본보다 우수합니다.) 근원에 가까운 이 새로운 사본들 때문에 본문비평적인 결정들을 내적 판단기준에 근거하여 새로이 내려야만 합니다.” Barbara Aland, Die Editio Critica Maior des Neuen Testaments : Ihre Anlage, jhre Aufgabe, die neu entwicklten Methoden der Textkritik, (Koeran Bible Socity Scholarly Forum, 2000. 8. 29), p.19.

“이로써 본문비평이 확실히 더 쉬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참신하고 새로우며 또한 흥미진진한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대략 100년 간 본문이 주로 시내 사본(א)과 바티칸 사본(B)의 증거에 따라서 구성되던 시기를 우리는 드디어 넘어서게 된 것입니다. 바티칸 사본 대체로 가장 잘 보존된 사본이라는 영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티칸 사본의 장점에 대하여 그리고 또한 그 오류에 대하여 판단을 내닐 수 있는 새로운 판단 기준들을 갖게 된 것입니다. Barbara Aland, Die Editio Critica Maior des Neuen Testaments : Ihre Anlage, jhre Aufgabe, die neu entwicklten Methoden der Textkritik, (Koeran Bible Socity Scholarly Forum, 2000. 8. 29), p.19.
[여기서 알란드는 바티칸 사본의 오류를 인정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갖게 되었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판단 기준들“을 방대한 양으로 제시된 비평장치(필사본들과 분석결과)라고 단순히 판단할 수도 있으나, 실상은 알란드의 대비평본에서 중요한 증거 자료로 수용된 비잔틴 필사본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IGNTP(International Greek New Testament Project)와 자신의 대비평본(ECM)의 차이에 대한 알란드의 설명에서 IGNTP는 이미 확정된 본문으로 헬라어 <표준원문>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이지만 자신은 필사본 자료들을 통해서 재구성해 가는 것이라고 답변한 것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그러나 바바라 알란드는 중요한 사실을 강의에서는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이와 같이 알란드의 강의는 자신이 새롭게 편집하는 대비평본(ECM)에 대한 소개와 함께 현존하는 필사본들의 90% 이상을 수집, 분석하여 본문의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었는데, 이전까지의 판단과는 다르게 비잔틴 필사본들의 가치와 역할이 크게 확대되었으며, 본문과 비평장치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잔틴 필사본에 대한 평가에 있어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헬라어 <표준원문>과 함께 평가절하한다. 자신의 학문적 입지를 위한 것이다. 분별력 없는 사람들의 무지를 틈 타서 거깃이 학문적 권위가 있는 것처럼 유포되는 것이다. 성경을 악용해서 거짓으로 속이는 목사들에 속는 사람들은 성경에 무지한 자들인 것처럼 그녀의 새로운 대비평본에 제시된 본문과 비평장치를 바르게 평가할 수 없는 사람들이 그녀를 따르는 것이다.

바바란 알란드의 대비평본(ECM)에 대한 평가
- 현존하는 필사본들의 90%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편집한 헬라어 성경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

바바라 알란드는 자신의 신약원문연구소에 전체 필사본의 90%에 달하는 방대한 필사본 자료들을 구비하고 있으며, 그것을 비교분석하여 이전의 비평적인 헬라어 성경들(NTG 27판이나 GNT 4판)과 다른 새로운 대비평본을 출간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역사적 프로젝트라고 선전되고 있다. 그녀의 새로운 비평판인 “대비평본”(ECM, Editio Critica Maior)이 과연 바른 본문을 담고 있겠는가?
알란드의 최종 편집본인 NTG 27판과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대비평본(ECM)의 야고보서를 직접 비교하고, 또 그것을 헬라어 <표준원문, TR>과 비교해 본 결과 NTG 27판에 없는 콤마(,)가 대비평본(ECM)의 본문에 11번 삽입되었고(1:5; 1:11 2회; 1:21; 2:10,11,14; 3:6,9; 4:3,7) 세미콜론(˙)이 한 번 삽입되었으나(5:6), 반면에 NTG 27판에서 기록하고 있는 콤마(,)를 삭제하거나(약 1:22; 3:6; 5:17), 세미콜론(˙)을 콤마로 바꾸거나(약 4:13), 의문부호(;)를 삭제하기도 했는데, 이러하 예는 모두 헬라어 <표준원문>에서 이탈한 것이다.
어떤 근거로 변경했는가는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근거를 찾는다면 <킹제임스성경>의 저본인 헬라어 <표준원문>과 비잔틴 필사본들이다. 이미 헬라어 <표준원문>은 위의 모든 구절들에 콤마와 세미콜론을 기록하고 있다. 바른 본문은 이미 보존되어 우리 손에 들려 있는데 알란드는 자신이 따라가는 기준을 밝히지 않았다.
또한 NTG 27판과 대비평본(ECM)의 본문상의 변화를 두 곳에서 확인했는데(1:22; 2:3), 두 구절에서 모두 바바라 알란드의 대비평본(ECM)은 변개된 본문으로 변경되었다.
1. 야고보서 1:22은『그러나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단순히 듣기만(μνον ἀκροαταὶ) 하는 자가 되어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바바라 알란드는 방대한 필사본들을 분석하고 비교하였노라고 하면서, 또 자료들을 제시해 놓고서도 이 본문에서 필사본 증거가 빈약한 이본을 그녀의 새로운 비평판(ECM)의 본문으로 확정했다 -『ἀκροαταὶ μνον』(ECM). 알란드의 본문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권위가 없으며, 자신의 이론을 스스로 허무는 것인가는 비평장치를 평가하면 분명해진다. 그녀가 변경한 본문을 지지하는 필사본 증거는 다음과 같다. 대문자필사본 03(4세기); 소문자필사본 206(13/14세기), 254(14세기), 398(10세기), 429(14/15세기), 522(1515/16년), 614(13세기), 630(12/13세기), 1448(12세기), 1490Z(12세기), 1505(12세기), 1524(14세기), 1611(11세기), 1799(12/13세기), 1852((13세기), 1890(14세기), 2138(1072년), 2147(11/12세기), 2200(12세기), 2412(12세기), 2495(15세기), 2652(15세기); 라틴어 역본의 필사본 66(F), 불가타 본문(V); 시리아어 역본 가운데 페쉬타(P, 4/5세기), 하크리안 역본(H, 6세기); 그루지아어 역본의 필사본 B(9/10세기) 등으로 모두 27개 증거가 있다. 반면 <킹제임스성경>의 저본인 헬라어 <표준원문>의 본문을 증거하는 필사본들은 파피루스 74(7세기); 대문자필사본 01(4세기), 02(*f)(5세기), 04(5세기), 025(9세기), 044(9세기); 소문자필사본 5(13세기), 69(15세기), 81(1044년), 88(12세기), 218(13세기), 322(15세기), 323(12세기), 400(15세기), 436(11/12세기), 621(11세기), 623(1057년), 629(14세기), 631(15세기), 808(14세기), 915(13세기), 918(16세기), 996(14세기), 1067(14세기), 1127(12세기), 1241(12세기), 1243(12세기), 1270(11세기), 1292(13세기), 1297(1290), 1359(12세기), 1409(14세기), 1490T(12세기), 1563(13세기), 1598(14세기), 1609(13세기), 1661(14세기), 1678(14세기), 1718(12세기), 1735(10세기), 1739(10세기), 1751(1479년), 1831(14세기), 1842(13/14세기), 2298(12세기), 2344(11세기), 2374(13/14세기), 2464(9세기), 2492(14세기), 2523(1453년), 2541(12세기), 2805(10/11세기), 다수의 비잔틴 필사본들, 교부들 가운데 요하네스 다마스케누스(8세기), 가까 오에쿠메니우스 등 54개의 명시된 증거들과 다수의 비잔틴 필사본들의 증거가 있다.
위와 같은 증거 자료들을 가지고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알란드의 새로운 대비평본을 반대하고 헬라어 <표준원문>을 지지하는 증거들 일반서신을 담고 있는 총 530개의 전체 필사본들 가운데 알란드의 대비평본을 지지하는 27개를 제외하고 또 이본을 제시하는 1개 필사본과 어떤 것을 지지하는가 분명하지 않은 2개 필사본, 그리고 문제의 본문과 명백한 연관이 없는 15개의 필사본들을 제외하여 총 45개의 필사본을 제외한 나머지 절대 다수의 필사본 증거를 가지고 있다. 알란드나 동류의 비평가들이 말하는 단지 후대의 혼합된 증거들이 아니다. 주지할 사실은 파피루스 74, 대문자필사본 01, 02, 04, 044, 소문자필사본 81, 322, 323, 436, 623, 1067, 1241, 1243, 1735, 1739, 2298, 2344, 2464 등은 알란드 자신의 책에서 제시된 필사본 판단 원칙에 따라 일반서신의 증거로서 가치와 신뢰도가 매우 높은 것들이며, Aland, The Text of the New Testament, pp..101,107,109,118,133-135,137.
특히 파피루스 74, 대문자필사본 01, 02, 04, 025, 044, 소문자필사본 1739 등은 알란드 자신이 NTG 27판을 출간하면서 야고보서의 필사본 증거에서 지속적으로 제시하는 “1등급 증거”라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Barbara et Kurt Aland, Johannes Karavidopoulos, Carlo M Martini, Bruce M. Metzger, Novum Testamentum Graece, 27.revididrte Auflage, (Stuttgart, Deutsche Bibelgesellschaft, 1993), p.62*
이것들 모두를 알란드 스스로 부정하고 잘못된 이본을 택했다는 점이다. 반면에 알란드의 변경된 본문을 지지하는 증거 자료들은 알란드 자신의 판단 기준에 따르면 대문자필사본 03, 소문자필사본 1490, 1799, 1852, 1890, 2138을 제외하고 모두 “범주 III”(category III)에 속하는 것으로 자신의 책에서 밝힌 원칙에 따라 증거의 무게가 상대적으로 열등한 것이다. 이러한 객관적 증거가 분명함에도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부정하여 분문을 변경시킨 것은 필사본 증거들에 근거하여 타당하게 결정내린 것이 결코 아니며, 단지 1881년에 출간된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헬라어 성경 본문으로(ἀκροαταὶ μνον) 거꾸로 돌아간 것이다. B.F. Westcott and F.J.A. Hort, The New Testament in the Original Greek.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1936), p.318
그녀의 학문적 편견이 자신의 주장을 부정하면서까지 성경 본문을 변개시킨 것이다. 결코 그녀가 자랑하는 것처럼 핸존하는 필사본들의 90%을 소장하고 그것들을 분석한 결과로 제시한 소위 대비평본이 바른 성경본문과 바른 판단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무지한자들과 바른 성경을 거부한 자들이 “미혹하는 여인”에게 속는 것이다.

2. 야고보서 2:3의 말씀은 이렇다.『너희가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을 보고 말하기를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시오.” 하고, 또 가난한 사람에게 말하기를 “거기 서 있든지 여기 내 발판 아래 앉든지 하라.”고 한다면』
<헬라어 표준원문> σὺ στήθι ἐκεὶ, ἢ κάθου ὧδε ὑπὸ τὸ ὑποπδιν μου
stand thou there, or sit here under my foostool

이 말씀은 헬라어 <표준원문>에서 바르게 기록하고 있고 <킹제임스성경>과 <한글킹제임스성경> 역시 바른 본문을 보존하고 있다. 이 구절은 4절의『너희는 너희 가운데 차별하며 또한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말씀처럼 화려한 옷을 입을 사람에게 좋은 자리를 앉게 해 주고 반면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여 대우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가난한 사람에게는 “거기 서든지” 아니면 “여기 내 발판 아래 앉든지”라는 대구를 이룬 표현으로 차별하는 행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알란드의 새로운 대비평본은『너는 서든지 내 발판 아래 거기 안든지 하라(ἢ κάθου ἐκεὶ)』라고 변경함으로써 대구가 되는 “여기”(ὧδε)라는 단어가 삭제되고 “거기”(ἐκεὶ)라는 단어 역시 부적합한 위치로 옮겨 놓았다.
이 구절에서 바바라 알란드의 대비평본(ECM)을 지지하는 증거자료는 대문자 필사본 03(4세기), 소문자필사본 945(12세기), 1175(10세기), 1241(12세기), 1243(12세기), 1739(10세기), 1852(12세기), 2298(12세기), 2492(14세기); 라틴어 역본의 필사본 66(F); 콥트어 역본의 사히드 역본 필사본들(Smss) 등이다. 반면 헬라어 <표준원문>을 지지하는 증거자료들은 대문자필사본 01(4세기), 025(9세기), 소문자필사본 5(13세기), 69f2(15세기), 88(12세기), 322(15세기), 323(12세기), 398(10세기), 400(15세기), 436(11/12세기), 621(11세기), 623(1037년), 629(14세기), 631(15세기), 808(14세기), 915(13세기), 918(16세기), 1067(14세기), 1127(12세기), 1270(11세기), 1297(1290년), 1409(14세기), 1448Z(12세기), 1490(14세기), 1524(14세기), 1598(14세기), 1609(13세기), 1735(10세기), 1751(1479년), 1831(14세기), 1842(13/14세기), 2147(11/12세기), 2344(11세기), 2374(13/14세기), 2464(9세기), 2523(1453년), 2541(12세기), 2652(15세기), 2805(10/11세기), 다수의 비잔틴 필사본[252(*f1)], 교부들의 증거 가운데 가까 오에쿠메니우스; 콥트어 역본 가운데 보하이르 역본(B, 3세기); 시리아어 페쉬타 역본(P, 4/5세기); 그루지아어 역본의 필사본 E(11세기), F(13세기), G(14세기), H(11-12세기), J(Cod. K-12); 슬라브어 역본의 필사본 Ch(12세기), D(13세기), M(13세기), Si(1324년) 등 개의 명시된 증거들과 다수의 비잔틴 필사본들이 있다.
이와 같은 필사본 증거들은 야고보서 1:22에서 살펴본 것처럼, 헬라어 표준원문을 지지하는 필사본 증거자료들 가운데 대문자필사본 01, 025, 소문자필사본 322, 323, 436, 623, 1067, 1735, 2344, 2464 등은 일반서신의 증거로서 가치와 신뢰도가 매우 높은 것들이며, Aland, The Text of the New Testament, pp..101,107,109,118,133-135,137.
특히 01, 025 등은 알란드 자신이 NTG 27판을 출간하면서 야고보서의 필사본 증거에서 지속적으로 제시되는 “1등급 증거”라고 밝혔던 필사본이다. Barbara et Kurt Aland, Johannes Karavidopoulos, Carlo M Martini, Bruce M. Metzger, Novum Testamentum Graece, 27.revididrte Auflage, (Stuttgart, Deutsche Bibelgesellschaft, 1993), p.62*
비록 알란드의 새로운 대비평본을 지지하는 증거들 가운데도 03, 1175, 1241, 1739, 1852 등도 신뢰도가 높은 필사본으로 구분된 것이지만 여전히 헬라어 <표준원문>에 대한 증거 필사본들보다 상대적으로 증거의 무게가 가벼운 것들이다. 이처럼 알란드는 본문의 내적, 외적 증거들이 다 열등한데도 1:23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잘못된 본문으로 변경시켰다. 그동안 알란드를 따랐던 세계 성서공회들과 번역자들은 그녀의 네슬-알란드 27판을 따랐다가 이제 그녀를 따라서 야고보서의 두 구절을 고쳐야 할 상황이다. 바바라 알란드의 편견과 주관이 변경될 때마다 누가 이 “미혹하는 여인”을 따를 것인가?
그동안 대한성서공회나 국내의 학자들의 절대 다수는 알란드가 편집한 GNT 4판과 NTG 27판이 최고의 헬라어 성경이라고 가르쳤는데, 이제 그녀를 따라 야고보서에서는 최소한 최고의 헬라어 성경 두 권을 저버리고 성경 본문을 변경해야 할 것이다. 무지한 학자들이 단순하게 그녀를 답습하고 쫒는 한 결코 그들은 바른 성경을 분별하거나 확신할 수 없다.


『거기 서 있든지(ἢ) 여기(ὧδε) 내 발판 아래 앉(κάθου)든지 하라 ἐκεὶ, ἢ κάθου ὧδε』(TR)『ἐκεὶ ἢ κάθου』(NTG 27판),『』(ECM)


○ 본문 비평은 전승 과정에서 생긴 명백한 오류로부터 출발합니다. 이 경우의 오류란 서로 관련없이 독자적으로 생긴 오류가 아니고 전승에 사용된 하나의 대본에서 인수되었음에 틀림없는 오류를 가리킵니다. Barbara Aland, Die Editio Critica Maior des Neuen Testaments : Ihre Anlage, jhre Aufgabe, die neu entwicklten Methoden der Textkritik, (Koeran Bible Socity Scholarly Forum, 2000. 8. 29), p.1.

- 처음 오류가 발생하는 것은 대본에서부터의 오류가 아니라 외부적인 유입이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기존에 통용되고 있는 오류에 대한 관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필사본 전승에서 소위 “출발점 본문”(Ausgangstext)에 인간의 의도적인 변경이 개입되지 않고서 어떻게 오류가 연쇄적으로 다음 사본으로 전승될 수 있는가? 처음 오류의 발생에 대한 분명한 입장 제시가 없이는 논의의 전제가 없는 주장이다. 분명한 사실은 인간의 비의도적인 실수가 개입되어 오류가 전승된 것보다 의도적인 목적으로 본문에 변경을 가한 것이 교리적, 신학적 문제를 발생하는 것이다.

○ 무엇보다도 오늘날 우리는...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 그들의 본문비평은 어는 것이 참된 성경 말씀인가를 판단할 수 없다고 시인하고 있다. 소위 그들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연구와 필사본 비교 등을 통해서 할 수 없으며, 외적 판단 기준을 강화시켜서, 즉 필사본 증거들을 통한 판단을 강화한다고 할지라도 불가능한 것이다.

○ 외적 판단 기준, 즉 각 사본의 가치와 그것의 신빙성 또는 개개의 오류 노출에 대한 우리의 통찰력이 개개의 사본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나머지 모든 사본들과 관련지어서 향상되어야 합니다.
- 여기에 대해 바르게 판단하면 Aleph, A, B, C, D 등은 신뢰할 수 없는 것들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집자들이 그 자료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지에 대하여 자기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점은 마찬가지로 분명합니다. 그 편집자들은 결국 하나의 비평적 본문을 구성해야만 합니다.
- 자료들이 어떻하든지 결국 주관적인 자신의 판단으로 본문을 구성한다는 것을 표명한 것이다. 역시 알란드의 비평판이 객관적 가치를 갖기 보다는 주관적이 산물임을 알 수 있다.

○ 사본들의 선택관 관련하여 : 총 530개에 달하는 공동서신의 사본들을 모두 제시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물론 담고 있는 하나하나의 사본은 꼼꼼히 검사한 것이라야 합니다. 검정구절들을 선택하고 모든 사본들을 이것들과 대조시킵니다. 이렇게하여 우리는 약 1/3에 달하는 사본이 동일한 본문, 즉 비잔틴 본문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정했습니다. 이들 사본 가운데 단지 몇몇 대표적인 사본들만 대비평본에 수록해야 했습니다.
- 필사본들의 모든 부분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검정 구절들’을 정하여 단지 몇몇 구절들의 비교로 필사본을 평가하는 것이 정확성을 기할 수 없다. 단지 통계적인 수치일 뿐이다. 전체 필사본들의 80-90%가 비잔틴 본문을 담고 있는데, 야고보서에서만은 약 30%만이 비잔틴 본문이라는 것은 그 검정 구절들의 선정이 알란드의 주관적 성향에 의해, 또는 다른 목적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이 밖에도 대배평본은 성구집에 관한 자료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장르의 본문 전승 담지자가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에 대한 조사를 통하여 그것들이 비잔틴 본문에 속한다는 사실이 새롭게 입증되고 있습니다.
- 성구집들이 비잔틴 본문, 즉 헬라어 표준원문과 영어 키이제임으성경의 본문이 바른 성경임을 입증한다는 것은 이미 120년 전에 딘 존 윌리암 버간을 통해서 입증된 사실이다.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닌데 자신들의 새롭운 발견으로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는 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과학이 성경보다 앞서거나 우선되지 못하고 성경을 뒤따라 입증하듯이 알란드를 비롯한 현대 학자들 역시 그와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과학의 업적 이전에 성경의 진리를 믿는 것이 필요하며, 무지한 자들을 필사본들로 속이는 것 이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신 바른 성경, 헬라어로는 헬라어 <표준원문>과 그 근거가 되는 비잔틴 필사본을 바른 성경으로 믿고 수용함으로써 헛된 인간의 지혜를 제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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