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한글 번역본 분류

현대판 바티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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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10월호>

바티칸사본과 시내사본의 정체
바티칸사본은 1481년 로마의 바티칸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 A.D. 330-340년에 기록된 이 사본은 10½×10인치나 되는 큰 사이즈의 필사본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그러나 바티칸사본은 구약에서 창세기 1:1-46:28, 시편 105:26- 137:6, 사무엘상, 열왕기상, 느헤미야의 부분들이 삭제되었고, 신약에서는 히브리서 9:14 이후,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이 모두 없다. 뿐만 아니라 외경이 구약에 정경으로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본은 현대의 많은 성서들의 번역 저본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성서들 중에 하나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성서인 <신세계역본, New World Translation>인데, 잠깐 여호와의 증인들의 성서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 신세계역>의 머리말을 보기로 하자.
“... 그리스도인 성경 <신세계역>은 널리 알려진 웨스트콧과 호트의 그리스어 본문에 주로 기초를 두고 있는데...”
학자들이 그렇게도 자랑하고 치켜 세우는 바티칸사본의 정체는 바로 여호와의 증인들의 성서인 것이다.
시내사본은 독일 학자인 티쉔돌프(Constatin von Tischendorf, 1815-1874)가 발견했다. 1844년 색소니의 프래드릭 아우구스투스 왕의 후원으로 여행을 하던 그는 시내 산의 성 캐더린 수도원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난로에 불을 피우기 위해 모아 둔, 종이로 꽉찬 쓰레기통 안에서 <칠십인역>(시내사본 구약)으로 취급받는 양피지 43장을 발견했다. 그후에도 신약 ‘전체’와 <칠십인역>의 많은 부분들과 바나바서신 및 허마의 목자서의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바티칸사본과 마찬가지로 이 사본도 많은 부분을 담고 있지 않는데, 시내사본은 요한복음 5:4; 8:1-11, 마태복음 16:2,3, 로마서 16:24, 마가복음 16:9-20, 요한일서 5:7, 사도행전 8:37 등과 12개의 다른 구절들이 삭제되어 있다. 반면 허마의 목자서, 바나바 서신 등의 신약 외경을 정경으로 담고 있으며, 변개된 디다케(Didache)도 담고 있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한다
이상의 내용이 바티칸사본과 시내사본의 정체이다. 두 사본은 현대 신학자들에게는 대단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지만,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는 그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한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두 사본이 발견된 상태와 장소만 봐도 증명이 된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들려졌던 필사본, 번역본들은 오늘날과 같이 좋은 종이들이 아니었고, 인쇄술도 발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이 필사되어서 돌려보게 되었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당연히 성경은 영적 양식이다. 그래서 매일 매일 읽혀지고 사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되지 않아 그 필사본은 망가지게 되고 또 다른 필사본으로 필사되었던 것이다(인쇄술이 발달한 지금도 자주 읽고 사용하는 성경은 빨리 손상된다.).
그때에도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이 옳은 본문인지, 또는 무엇이 잘못된(변개된) 본문인지 분별할 수 있었고(고후 2:17), 잘못된 본문을 담고 있는 필사본들은 태워지거나 창고에서 썪어 갔던 것이다. 그러한 필사본들이 바로 <바티칸사본>과 <시내사본>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성경을 믿는 믿음”이다.
오늘날도 “말만 기독교인”인 사람들에게는 성경이 하나의 장식용 장서나 부적(?)에 지나지 않는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주차하고 있거나 주행중에 있는 차의 앞 창이나 뒷 창에 성경(물론 개역성경)이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성경을 믿는(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이 성경을 갖고 있는 분명한 이유를 알 것이다. 나는 그 성경들이 왜 그곳에 놓여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것은 성경이 그 곳에 놓여 있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말은 하지만, 어디까지나 빈말에 지나지 않는 “말만 기독교인”인 사람들 중 한 사람일 것이다.

“말만 기독교인”을 따라가 보자. 주일이면 어김없이 차 안에 있던 책을 집어든다. ‘툭! 툭!’ 먼지를 털어서 옆구리에 끼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 본다. 고민이다. 오늘은 얼마나 내야 할까? 교회 현관을 들어서면서 동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음으로 인해 흐뭇하다. 아까 그들도 차에서 책의 먼지를 터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총 천연색의 헌금봉투는 무지개 색깔보다도 많다. 이때부터 눈치전쟁이다. 목사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자리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서이다. 아차! 김집사가 먼저 앉아 버렸다. 낭패지만 상관없다. 앉는 자리가 곧 명상하는 자리가 될테니... 목사의 설교 시간에 성경을 펴보지만 ‘이사야서’가 어디 있든 무슨 상관인가? 대충 편다. 이내 눈꺼풀은 최고의 중량으로 짓누르고, 목사의 설교는 알라스카의 냉기가 되어 청중들을 얼려버린다. “...영원토록 함께 있을 찌어다.”라는 축도와 함께 그는 냉동 잠에서 깨어나 “아멘”하고 ‘부활(?)’한다. 그는 현관을 나서면서 목사와 악수를 한다. “목사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흐뭇한 표정으로 차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면서 그의 책은 다시 ‘성스러운 책’, 감히 들춰 볼 수도 없는 거룩한 책이 되어 버린다.

이번에는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을 따라가 보자. 그의 책은 항상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아침 저녁으로 펼쳐지고 읽혀지고, 줄이 그어지며, 색칠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도 그 책은 펼쳐진다. 주일이면 평상시처럼 그의 손에 들려져서 교회를 향한다. 목사님의 설교 시간이면 설교에 따라서 이곳 저곳이 펼쳐진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그 성경의 수명은 단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말만 기독교인”의 그 책과 “성경대로 믿는 사람”의 성경은 평균 수명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초기 신약 교회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거룩한 책(THE HOLY BIBLE)이라고 불리운다. 그러나 거룩하다고 해서 “말만 기독교인”들이 하는 것처럼 ‘거룩하게’ 다루어져서는 안된다.
물론 성경의 본문 자체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다루어져야 하며, 더하거나 빼거나 변개시켜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이 책은 마구 다뤄져야 한다. 계속 펼쳐지고 읽혀지고 사용되며 몸살이 나서 찢어질 정도가 되어도 이 거룩한 책은 전혀 화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성경을 읽고(사 34:16), 상고하고(행 17:11), 주의하고(렘 23:18), 두려워하고(사 66:2), 묵상하고(시 119:97,148), 복종하고(대하 34:21), 암송하고(시 119:11), 공부(딤후 2:15)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장식용 “장서”가 된 현대판 바티칸사본과 시내사본
현대판 바티칸사본을 보고 싶은가? 대한성서공회 성서학문헌정보자료실에 가보라. 수 많은 성서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거부된 채 학자들과 박사들을 위해 도서관의 장서가 되어 있다. 그곳에는 초기번역본(이수정역, 로스역 등)에서 <개역개정판>까지 거의 모든 성서들이 있다(<한글킹제임스성경>만 제외하고).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책꽂이에 꽂혀있는 장서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읽고 사용할 수 있는 성경을 원하는 것이다.
또한 현대판 시내사본을 보고 싶은가?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개역성경>은 이미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손에서 버려진 후일 것이다. 혹 가지고 있다면 그 이유는 “말만 기독교인”들에게 무엇이 틀렸는지를 알리기 위해서이다.
왜 이와 같은 일들이 초기 신약 교회 때부터 1997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것일까? 성경에 해답이 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기 때문이다(전 1:9). 그때에도 변개된 성서와 보존된 성경이 있었고, 그때에도 “말만 기독교인”과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지금까지 무엇을 보았든지 상관이 없다. 당신이 설령 <개역성경>을 수백 번 읽었다 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개역성경>은 이미 장로교 개혁총회에서는 현대판 바티칸사본과 시내사본이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신구약>을 이미 3만권이나 찍어서 배포하고 있다. 대한성서공회나 성경공회의 신학자나 박사님들은 ‘더 좋은, 더 나은 번역본’을 준비하기 위해 <개역성경>을 고대 바티칸사본처럼 책꽂이에 안치시켰다. 단지 그들이 <개역성경>을 사용하는 것은 아직도 <개역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는 무지한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이다(갈 1:10). 그래도 당신은 계속 <개역성경>을 고집하겠는가?
하나님께서는 고대 바티칸사본과 시내사본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마찬가지로 현대판 바티칸사본과 시내사본에도 관심이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읽고, 사용할 수 있는 최종권위의 성경에만 관심이 있으시다.
그 성경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필자 또한 성경대로 믿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있게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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